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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길상탑 - 해인사길상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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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길상탑 - 해인사길상탑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 8. 7. 00:09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1구 10

해인사< 海印寺 > 일주문< 一柱門 >에서 남쪽으로 약 50m 지점< 支點 >에 소탑< 小塔 > 1기< 基 >가 서있다. 이 소탑< 小塔 >은 가람배치< 伽藍配置 >와는 무관< 無關 >하게 노변< 路邊 >에 안치< 安置 >된 일종< 一種 >의 장엄탑으로도 생각되며 상하이층< 上下二層 > 기단< 基壇 >에 우주< 隅柱 >, 탱주< 탱柱 >의 양식은 물론, 옥개석< 屋蓋石 >의 층급< 層級 >받침 또한 5단으로 전형적인 신라삼층석탑< 新羅三層石塔 >이며 높이는 약 3m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의 전형 석탑양식을 갖춘 탑으로 2층의 기단을 지니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상층 기단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가 낮고 넓어서 상당히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옥개받침은 각각 5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 相輪部 >는 노반< 露盤 > 이상이 결실되었으나 노반< 露盤 >에 지름 5.2㎝ 정도의 찰주< 刹柱 >를 꽂았던 원형구멍이 남아 있다. 이 탑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중 소탑< 小塔 >이 157개가 있으나 완전한 수량이 아니다. 이는 이 탑의 건립이 탑지< 塔誌 >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에 유행한 조탑경< 造塔經 >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 >에 의거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소탑< 小塔 >은 원래 99개, 77개가 안치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망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4매의 탑지< 塔誌 >는 23㎝의 정방형으로 두께 2.4㎝의 검은 전판< 塼板 >으로 만들어졌는데 명문은 신라< 新羅 > 말기의 대문장가인 최치원< 崔致遠 >이 찬< 撰 >한 것으로서 유명하다. 즉 건령< 乾寧 > 2년(신라 진성여왕< 新羅 眞聖女王 > 8년 서기 895)을 전후한 7년에 걸친 통일신라< 統一新羅 >말기의 혼란 속에서 창궐한 도적떼로부터 사보< 寺寶 >를 지키기 위해 힘쓰다 희생된 승속< 僧俗 >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했다는 사실과 함께 탑의 높이, 공장승< 工匠僧 >, 탑 안에 납입한 법보< 法寶 >의 내용 및 탑을 건립하는데 소용된 비용 등을 기록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탑의 높이를 일장삼척< 一丈三尺 >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상륜부< 相輪部 >가 결실되었으나 현재 탑의 높이를 3m로 볼 때 이 탑의 조성에 당척< 唐尺 >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도량형< 度量衡 >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탑지< 塔誌>의 기록에 따라 석탑건립에 소요된 비용과 물품 등은 당시의 사원<寺院> 경제연구<經濟硏究>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 및 소요된 비용 등의 기록을 통해 통일신라<統一新羅> 말기 혼란된 사회상을 비롯하여, 경제상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 해인사 길상탑<海印寺 吉祥塔>은 3m의 단아<端雅>한 소탑<小塔>으로서 섬약<纖弱>하면서도 소박<素朴>한 특징을 보여주는 신라하대<新羅下代>의 대표적인 소탑<小塔>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호법<護法>을 위하여 순교<殉敎>한 승병<僧兵>들의 뜻을 기리는 최치원 선생<崔致遠 先生>의 찬문<撰文>이 기록된 탑지석<塔誌石>도 발견<發見>되어 해인사<海印寺> 및 신라불교연구<新羅佛敎硏究>에도 귀중한 사료<史料>로 평가되어 보물<寶物>로 지정<指定>할 가치<價値>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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