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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왕정이 가장 오랜기간 경영되어 오던 궁

by 넥스루비 2007. 8. 7.
서울 종로구 와룡동 1

창덕궁은 처음에는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때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소실되고 조선말기에 복구될 때까지 270여년간 역대 임금이 이궁에서 정사를 봄으로써 본궁의 구실을 한 궁이다. 다시 말하면 왕정(王政)이 가장 오랜기간 경영되어 오던 궁인 것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관대궐' 또는 '동궐(東厥)'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창덕궁을 비롯하여 창경궁, 종묘가 모든 다른 궁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당초에는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동궐이었다. 특히 창덕궁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후원(後苑)이 조성되어 있어 중요한 비중을 안고 있는 궁이기도 하다.

창덕궁의 특징은 정궁(正宮)인 경복궁과는 달리 배치상에 규제가 없었다.
1축 선상에 전당을 두고 경복궁의 배치법 보다는 자연 지세에 알맞은 배치로 조화를 맞추어 가는 구상을 하였다.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으로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돌아 금천교(錦川橋)를 지나면 회랑이 있는 진선문(進善門)을 지나게 되는데 최근에 복원이 되었다. 다시 왼편에 남향하여 인정문(仁政門)을 들어서야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에 들어서게 된다. 정전인 인정전 동편으로 일상 집무를 보던 선정전(宣政殿)과 희정당(熙政堂)이 있고 그 동북편으로 내전(內殿)인 대조전(大造殿)이 있다.
그리고 동편으로 좀 떨어져서 내의원(內醫院)곽 낙선재(樂善齋)가 있다. 낙선재 바로 뒤가 창경궁이었는데 일제시대에 모두 헐려지고 지금은 별궁과 같이 되었다.

창덕궁은 조선 제3대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이 재천도하면서 창건한 궁이다.
태조 4년(1395년)에 시작된 공사는 만 일년만에 완공을 보았고 태종은 궁이름을 '창성한 기운으로 큰 덕을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창덕궁(昌德宮)이라 칭하였으나 이 때에는 아직 궁궐로서의 여러 면모가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태종 11년에 이르러 진선문 석교(금천교)를 신축하고 태종 12년에는 돈화문을 건립함으로서 창덕궁은 완전한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세조가 즉위하여 창덕궁으로 옮겨오면서 큰 공력을 들여 후원을 가꾸었는데 후에는 많은 왕들이 후원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조선초기에 왕들은 경복궁에서 주로 정사를 보았으므로 창덕궁을 크게 이용하지 않은 듯 하나 제9대 성종(成宗, 재위 1469-1494)이 즉위하고부터는 왕이 창덕궁에 머물면서 정사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임진왜란때 경복궁을 비롯한 창덕궁, 창경궁 등이 전소되었는데 세 궁궐 중 창덕궁은 가장 먼저 복구 착수되어 1609년(광해군 1)에 중건되었다. 곧 이어 창경궁도 복원 되었지만 경복궁만은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868년에 중건되었다.
따라서 창덕궁은 임진왜란후 중건되면서부터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써 나라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치르는 역사의 주무대가 된다.

[대중교통]
* 지하철
3호선 안국(3)-도보 4분
* 버스
창덕궁 143-1, 16, 2, 6, 8,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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