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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리어필각 - 학행과 효성이 지극함이 널리 알려지자 임금이 하사한 글귀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남원시 송동면 장포리 480

이 어필서액< 御筆書額 >은 조선 태조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文孝公 > 연< 演 >의 16세손인 문인< 文人 >이 하늘에서 내린 효자라하여 국가로부터 정려< 旌閭 >를 포전< 褒典 >받고, 참판< 參判 >을 증직< 贈職 >받은 바 있으며, 또한 그의 아들인 준호< 浚浩 > 역시 학행과 효성이 지극함이 널리 알려지자 헌종< 憲宗 >께서 직접 하준호의 호를 「운초재< 雲蕉齋 >」라 짓고, 이 호를 목판에 휘호함과 더불어 헌종의 호를 쓰고 이를 음각하여 하사하고 정려어필각< 御筆閣 >도 짓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참판의 벼슬을 증직하였다. 이 어필서액을 하사받을 때에「운초재」서문은 당시의 대광보국숭녹대부영의정전병국< 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全炳國 >이 썼으며, 어필각명병기< 御筆閣銘병記 >는 대광보국숭녹대부판부사 신응조< 大匡輔國崇祿大夫判府使 申應朝 >가 썼는데, 이 두 서문 또한 판각< 版刻 >되어 어필각에 함께 보존되어 있다. 이 남원 송동 장포리의 진주하씨< 晋州河氏 > 집안은 대대로 충효가 전래되고 있어 충열효행비< 忠烈孝行碑 >가 인근에 10여개 건립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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