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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포 - 낙강칠현(洛江七賢)의 뱃놀이터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

개경포는 '개포' '개산포' 등 여러가지로 불린다. 첫 이름은 산이 열리는 곳이라는 뜻의 '개산포'다. 개경포로 통하게 된 것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연관이 있다. 완성된 팔만대장경이 이 포구를 통해 해인사로 운반되었던 것이다. 일제시대부터는 경(經)자가 빠진 개포가 됐다.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글 경자를 빼버린 것이다.

이 포구는 예로부터 곡류와 소금을 운반하는 배가 많이 드나들었다. '창야'라고 불리는 들 부근에는 물품을 보관하는 큰 창고도 있었다고 한다. 기방마다 장구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을만큼 지역 경기가 좋았다고 전해진다.

조선 선조 때에는 이 곳 강변이 낙강칠현(洛江七賢)의 뱃놀이터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송암(松庵) 김면(金沔), 청휘당(晴暉堂) 이승(李承),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한강(寒岡) 정구(鄭逑), 대암(大庵) 박성(朴星), 낙빈(洛濱) 이홍우(李弘宇), 옥산(玉山) 이기춘(李起春) 등 일곱명이 배 위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그렇다고 개포가 낭만과 여유의 고장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임진왜란때는 왜구가 자주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1592년(선조 25년)에는 김면선생이 군대를 이끌고 왜적선 2척과 격전이 벌여 이 일대가 피바다가 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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