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난계국악축제 - 국악의 아버지이신 난계 "朴堧" 선생은 국악의 이론을 정립하고...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영동군 영동읍

우리나라 국악의 아버지이신 난계 "朴堧" 선생은 국악의 이론을 정립하고 12律管의 기본청도를 만들어 현,관, 타악기들을 제작정비하였고 아악 및 향악과 당악의 율조를 조신하여 악기보법 및 악기의 그림을 실은 악서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연주에도 오묘한 경지에 도달한 분이다. 이 위대한 악성이 낳고 묻혀있는 향리 영동에서 第32회 난계국악축제 행사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 뜻이 있다.
첫째/문화예술의 창달에 앞장서온 선조들의 위업을 계승보존하므로서 민족 주체의식을 확립하고 국민화합의 계기가 되고자 한다.
둘째/국악의 확대보급 및 생활화로 국민정서함양과 건전한 민족음악으로 승화 발전시켜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셋째/국악을 바탕으로 모든 전통문화예술 진흥을 꾀하는데 기여하므로써 난계의 鄕里, 이 고장이 "베토벤"의 고향 "본" 市와 같이 음악인은 물론, 전국민의 憧憬의 대상이며 순례지가 되게 하여 음악의 고장으로 만들어 보자는것이다.
음악가 박연 선생 (1378년 고려 우왕 4년-1458년 세조 4년)
자는 탄부 호는 난계 초명은 연이었으며 본관은 밀양 박씨로 좌윤 박천석의 아들로 고려 우왕 4년 8월 20일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난계선생은 국당 박흥생의 4촌 동생으로 어려서 영동향교에서 공부하였는데 그에 호인 난계의 유래는 그의 정원에 난초가 많았기 때문이라 한다.
난계는 1405년(태종5) 28세에 생원이 되었고 34세 1411년(태종11) 때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를 거쳐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세자시강원 문학을 지냈다. 세종이 즉위하자 난계를 관습도감 제조로 임명하여 음악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1425년(세종7) 관습도감의 악학 별좌로 2월부터 시작하여 1430년(세종12) 12월에 걸쳐 한권의 악서가 만들어졌으니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 악률 사용법 조차 없어질까 염려되어 악서의 편찬이 시급함을 느끼게 된 바 그는 즉시 향악, 당악, 아악의 율조를 조사하고 악기보법 및 악기의 그림을 실어 한권의 악서를 만들었는데 이 책은 예조 봉상시 악학관습도감 아악서에 각각 한권씩 소장되어 있다.박연은 많은 아악기를 제작하였는데 석경을 비롯하여 생포, 방경, 훈축, 토악, 대고, 영고, 뇌고, 노고, 죽독, 건고, 편종 등 모두 옛 제도에 맞도록 제작, 혹은 개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악기 제작보다는 여러 악기의 율조에 더 의의가 있는 것이니 악기의 조율이 완전히 되어야 비로소 139개의 악기합주가 깨끗한 화음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악기의 율조에 필요한 것은 편경인데 경은 돌로 만든 것으로 쇠로 만든 종같이 춥고 더운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아 음이 불면하기 때문에 이에 다른 여러 악기가 조율된다. 또한 편경의 율조에 필요한 것은 12율관인데 편경은 율관으로 조율되어야 하며 율관 제작에 필요한 것은 거서(기장이라는 곡식이름)였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