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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구곡시화병 - 12곡(曲)의 병풍으로 만든 고산구곡시화병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고양시 일산구 주엽2동 문촌마을 라이프주택 202동 901호

고산구곡화병은 순조시<純祖時>의 인물로 추정되는 현보행<玄溥行>(자<字>는 도원<道源>, 호<號>는 일운<一雲>)이 계획<計劃>을 세워서 12곡<曲>의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명폭<名幅>은, 상면<上面>에 유한지<兪漢芝>가 표제<標題>를 쓰고 매폭<每幅>을 상하단<上下段>으로 나누어 상단<上段>에는 주사란<朱絲欄>으로 16행<行>의 계선<界線>을 그어, 이이<李珥>의 원가<原歌>와 송시열<宋時烈> 및 각인<各人>의 역시<譯詩>를 현씨 당시<玄氏 當時>의 여러 사람이 썼다. 글씨를 쓴 사람은 김리영<金履永>, 김조순<金祖淳> 이하<以下> 모두 안동김씨일문<安東金氏逸門>의 필적<筆蹟>인 점이 이채<異彩>를 띠운다. 하단<下段>에는 구곡의 총도<摠圖>및 구곡의 각도<各圖>를 각명가<各名家>의 그림으로 그리고 각<各> 화면<畵面> 여백<餘白>에다 금가순<金可淳>이 자작<自作>의 차운시<次韻詩>를 써서 화두<畵頭>에 대신하였다. 구곡의 원가<原歌>와 그림이 서시와 함께 10폭<幅>인데 제1폭에는 최립<崔립>이 지은 고산구곡담기<高山九哭潭記>를 쓰고 끝 폭<幅>인 제12폭에는 구곡도병<九曲圖屛>의 발<跋>이 있다. 발<跋> 끝에 「숭정후삼계해추상한<崇禎後三癸亥秋上澣>」(1803, 순조 4년<純祖 4年>)이라고만 쓰고 작자의 이름은 없으나 「 무부경< 無不敬 >」「송환기인< 宋煥箕印 >」「심재< 心齋 >」의 삼방<三方>의 도서가 있어 송환기<宋煥箕>의 작<作>임을 알 수 있다. 환기<煥箕>는 송시열<宋詩烈>의 6대손<代孫>이며 호론파<湖論派>에 속한 유학도<儒學徒>인 듯하며 당시의 세도가<勢道家>인 안동김씨<安東金氏> 일문<一門>과도 각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이 화병<畵屛>은 일대<一代>를 대표하는 화가<畵家>들이 총동원 되어 합작한 것이므로 일대<一代>의 대표적회화<代表的繪畵>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조선조<朝鮮朝>에서 기호학파<畿湖學派>를 대표하는 계통<系統>의 연원도<淵源圖>와 같은 성격을 지닌 것이 본도<本圖>에서 보는 또 하나의 특징이며, 그 주류<主流>만을 도시<圖示>하면 다음과 같다. 이이<李珥>(西人)→□→송시열(노론)<宋時烈(老論)>→권상하외<權尙夏外>→(한원진)(호론)<韓元震 (湖論 )>→□→송환기<宋煥箕> 또한 정치사적<政治史的>으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 19세기중 장기간 세도<勢道>를 잡았던 김조순일가<金祖淳一家>에 의하여 글씨가 쓰여졌다는 것이다. 실은 그들이 정권을 잡았으면서도 그 사상적 배경은 언제나 학문의 계통을 등에 업고 있었던 것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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