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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 - 조선시대 지방재정으로 설치.운영된 공립중등학교격인 동래향교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동래구 명륜동 235

향교< 鄕校 >는 고려시대< 高麗時代 >에 시작되어 조선시대< 朝鮮時代 > 말까지 이어져 내려온 지방 교육기관이다.
국가에서 관장했던 향교는 중앙의 사학과 같아서 여기서 공부한 후 과거에 합격하면 생원< 生員 > 또는 진사< 進士 >가 되어 성균관< 成均館 >으로 가서 다시 공부하여 문과시< 文科試 >에 응시하여 고급관료가 되는 길을 밟았다.
이 향교가 언제 설립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지만 조선< 朝鮮 > 태조< 太祖 > 원년(1392)에 교육진흥책으로 전국의 부·목·군·현< 府·牧·郡·縣 >에 각각 하나씩 향교를 세울 때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향교에는 유교< 儒敎 >의 성현< 聖賢 >을 모신 대성전< 大成殿 >, 학문을 강의하는 명륜당< 明倫堂 >, 교생들이 기거하는 동·서재< 東·西齋 >, 그리고 동·서무< 東·西 >, 전사청< 典祀廳 > 등의 부속건물들이 있는데, 이 향교는 일반향교의 건물배치가 대성전과 명륜당이 1렬인 것과 달리, 2열로 되어 있다.
동래향교의 정문인 2층 문루를 반화루< 攀化樓 >라고 한 것은 반룡부봉< 攀龍附鳳 > 즉 성인을 따라 덕을 이루고 임금을 받들어 공을 세우기를 원하는 뜻에서 따온 것이라 하겠는데, 이는 곧 동래향교의 교품이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동래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宣祖 > 38년(1605) 동래부사 홍준< 洪遵 >이 중건한 뒤, 여러 차례 장소를 옮기면서 중건되었으며, 순조< 純祖 > 13년(1813) 동래부사 홍수만< 洪秀晩 >이 지금의 자리에 이건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동래향교에 종6품의 교수1명이 있고, 학생의 정원은 70명으로 되어 있으며 또 향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하여 학전 7결이 지급 되었다고 한다. 동래향교의 대성전에서는 춘, 추 두 번의 제향이 거행되었고, 지금도 음력 2월과 8월의 초정일에 유림에 의해 향사가 받들어지고 있다.
향교에는 공자 이하 중국의 저명한 유현(儒賢)과 우리나라 역대의 유현을 모시고 있는 대성전(大成殿)과 학업을 강의하는 명륜당(강당)을 비롯하여 교생들이 기거하는 동, 서의 양재가 있어, 중앙에 있는 성균관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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