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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안공신도비부묘소 - 비문은 정인지( 鄭麟趾 )가 지었으며 글씨는 공의 네째아들 안빈세( 安貧世 )

by 넥스루비 2007. 8. 7.

서울 도봉구 방학동 산63-1

이 비는 조선< 朝鮮 > 세종대왕< 世宗大王 >의 따님인 정의공주< 貞懿公主 >의 부군 양효< 良孝 > 안맹담< 安孟聃 >의 신도비< 神道碑 >로서 세조< 世祖 > 12년(1466)에 건립되었다. 안맹담(1415∼1462)의 자< 字 >는 덕수< 德壽 >로서 가선대부< 嘉善大夫 > 함길도< 咸吉道 > 관찰출척사< 觀察黜陟使 > 함흥< 咸興 > 부윤< 府尹 > 안망지< 安望之 >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 世宗 > 10년(1428)에 부마< 駙馬 >가 되어 죽성군< 竹城君 >에 책봉되었다. 세종 14년(1432)에는 연창군< 延昌君 >에 봉해졌고 세조 3년(1457)에는 원종공신< 原從工臣 >에 책록되었다. 공은 평소 가산 증식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초서< 草書 >에 능하였으며 음률< 音律 >에도 조예< 造詣 >가 깊었다. 그후 세조 8년(1462) 춘추 48세로 병사하였다. 대리석< 大理石 >으로 된 비신은 풍화로 일부 파손되었다. 이수< 이首 >와 귀부< 龜跌 >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정인지< 鄭麟趾 >가 지었으며 글씨는 공의 네째아들 안빈세< 安貧世 >가 썼다. 묘소는 정의공주와 쌍분< 雙墳 >으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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