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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부청헌당 - 조선( 朝鮮 ) 말기( 末期 )의 삼군부청사( 三軍府廳舍 )

by 넥스루비 2007. 8. 7.
서울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이 건물은 조선< 朝鮮 > 말기< 末期 >의 삼군부청사< 三軍府廳舍 >로서 원래 광화문< 光化門 > 남쪽 현 정부종합청사< 政府綜合廳舍 > 자리에 있던 것을 1967년 현 위치로 옮기고 1977년 보수한 것이다. 삼군부는 조선 초기의 군무< 軍務 >를 통할< 統轄 >하던 관청인 의흥삼군부< 義興三軍府 >를 약칭< 略稱 >하는 것으로 조선 말기에 이르는 동안 명칭의 변화가 여러 번 있었다. 흥선대원군< 興宣大阮君 >이 집권한 후 고종< 高宗 > 2년(1865)에 훈련도감< 訓鍊都監 >의 신영< 新營 >·남영< 南營 >·마병소< 馬兵所 >를 합설하여 다시 삼군< 三軍 >이라 불렀고 그 청사를 현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세웠다. 대원군은 이 삼군부로 하여금 일체의 변정< 邊政 >과 국방< 國防 > 관계를 맡아보게 하였으나 그가 몰락한 후 고종 17년(1880) 삼군부를 폐지하고, 그 직무를 새로 설치한 통리기무아문< 統理機務衙門 >에 이관< 移管 >시켰다. 이 건물은 고종 5년(1868)에 지은 것으로 건물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초익공계< 初翼工系 > 팔작지붕으로 그 모양새는 모두 조선 말기의 서울 관아건물< 官衙建物 >에서 흔히 보이는 양식< 樣式 >이며, 지금도 신관호< 申觀鎬 >(신헌< 申櫶 >으로 개명< 改名 >)의 낙관< 落款 >도 뚜렷한 현판< 懸板 >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은 고종 17년(1880)에 통리기무아문의 청사가 되었고, 고종 31년(1894) 갑오경장< 甲午更張 > 이후로는 시위대< 侍衛隊 > 청사를 거쳐 융희< 隆熙 > 4년(1910)부터 1926년 순종황제가 승하할 때까지 조선< 朝鮮 > 보병대< 步兵隊 > 사령부< 司令部 >로 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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