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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편사놀이 - 고종 광무3년(1899)에 궁예( 弓藝 )를 향상시키라는 지시

by 넥스루비 2007. 8. 7.

서울 은평구 응암동 163-3

황학정은 그 역사가 오래이면서 기록으로 남은 것이 적다. 그러나 무진년< 戊辰年 >(1927)에 기록한 황학정기< 黃鶴亭記 >의 현판이 남아 있었고 6.25전란중에 소실되었으나 그 탁본이 남아 있어 황학정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고종 광무3년(1899)에 궁예< 弓藝 >를 향상시키라는 지시가 있어 경희궁 북쪽 산록에 정자를 짓고 황학정이라 했다. 즉 황학정은 고종의 윤응에 따라 궁술을 익히기 위한 목적으로 경복궁에 가깝고 경희궁의 뒷산에 지었다. 따라서 황학정은 100년의 역사가 있고 1999년 11월 14일에는 개정 100주년을 맞아 제6호 장안편사대중회를 개최하였다. 임진왜란을 겪고 무사< 武士 >는 물론 민간인에게도 궁술을 권장하여 등용할 수 있도록 선조< 宣祖 >는 경복궁 건춘문< 建春門 >안에 상정을 신축하여 오운정< 五雲亭 >이라 하였고 그후로 인왕산< 仁旺山 > 서남쪽에 백호정< 白虎亭 >을 지었고 백호정의 터가 좁아 순조< 純祖 >7년에는 넓은 터를 잡아 신축하였으니 풍소정< 風嘯亭 >이다. 이어서 필운동에 등과정< 登科亭 > 목동에 등용정< 登龍亭 > 사직동에 대송정< 大松亭 > 삼청동에 백악정< 白岳亭 > 삼청동에 운용정< 雲龍亭 >이 생겨서 장안 서촌< 西村 >의 오사정< 五射亭 >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궁술이 쇠퇴하게 되고 따라서 사정도 사양길에 들었다. 황학정은 처음엔 경희궁 북쪽에 있었으나 1922년에 옛 등과정< 登科亭 >자리로 옮겨 새로 지었으니 오늘의 황학정< 黃鶴亭 >이다. 황학정은 많은 궁사들이 모이고 장안을 대표하는 사정으로 유지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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