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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봉의산성 - 춘천봉의산성(春川鳳儀山城)

by 넥스루비 2007. 8. 7.
강원 춘천시 소양로1가 산1-1

자연석을 약 25㎝×50㎝정도의 장방형<長方形>으로 다듬어 쌓은 길이 19m, 길이 6m의 성벽<城壁>이 현재 남아 있다. 현재 강원도청이 자리한 뒷산인 봉의산 8부 능선쯤에 경사 70°정도의 가파른 지형을 이용해서 골짜기 부분을 주로 석축하듯이 쌓은 성인데 허물어진 곳이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봉산고성석축 주이사육 삼척 고십척<鳳山古城石築 周二四六 三尺 高十尺>"으로 나타나 있으며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15에 의하면 고려<高麗> 고종<高宗> 4년(1217) 거란족의 침입으로 안찰사<按察使> 노주한<盧周翰>이 전사<戰死>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고종<高宗> 40년(1253) 몽고족의 4차 침입시 춘천 주민들은 산성<山城>에 들어가 항거<抗拒>하였고 몽고병의 포위가 오래되자 식수가 없어 소와 말을 잡아 그 피를 마셨다고 하며 조효립<曺孝立>은 자기의 처와 함께 불길에 뛰어들어 죽었다. 당시 교주<交州> 안찰사<按察使> 박천기<朴天器>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뛰어나가 몽고군<蒙古軍>이 포위하기 위하여 쌓은 목책<木柵>을 부수면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몽고군이 성밖에 파놓은 웅덩이 때문에 성내<城內>의 모든 군졸과 주민은 한사람도 못나가고 모두 순절<殉節>하였다.
임진왜란<稔辰倭亂> 때에는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의 활동지였으며 한국전쟁<韓國戰爭> 당시에도 격전지였다. 유물로는 1966년 봉의사 밑의 우물을 파던중 발견된 투구가 있으며 국립박물관<國立博物館>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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