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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충신죽죽비 - 삼국통일의 초석 신라충신 죽죽 본문

문화ㆍ행사/사적

신라충신죽죽비 - 삼국통일의 초석 신라충신 죽죽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08.07 00:09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152

비각의 현판은 "신라충신 죽죽지비"라 하였다. 즉 신라 선덕왕대에 활동하였던 충신 죽죽의 충절을 기리는 석비이다. 그는 오늘날의 합천 지역인 대야주 사람으로 그의 부친은 찬간학열로 알려져 있다.
비문과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죽죽은 사지가 되어 대야성 도독 김품석의 휘하에 있던 선덕여왕 18년(642) 8월에 백제 1만 대군의 습격을 받아 대야성이 위태로워졌다. 그 틈을 타 성주 금일은 적과 내통하여 민심은 매우 교란되었다. 이에 품석은은 죽죽이 끝까지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성문을 열고 나아가다 적의 복병에 패망하자 처자를 죽이고 자결하고 말았다. 다시 죽은 나머지 병사를 거두어 이름 그대로 대나무와 같은 절개를 지켜 끝까지 굴하지 않고 항전하다 전사하기에 이르렀다. 신라 선덕여왕은 그의 용맹성과 위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죽은 후에 급찬으로 추증하여 그의 뜻을 기렸다.
화강암에 새겨진 이 비는 조선 중종 20년(1525년)에 이르러 군수 조희인이 죽죽의 충절을 기리고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비문은 한사 강대수가 지었다.

[설명비문]
"여기 이 고장의 젊은이들에게 끝 없는 용기와 긍지를 심어 주신 이가 계시니 그 이름 죽죽 이로다. 죽죽은 이 고장 출신 화랑으로서 신라 선덕여왕때 사지라는 벼슬을 지내며 대야성주 김품석 밑에서 성을 지키게 되었다. 선덕여왕 11년(서기 642년) 8월 백제 장군 윤충이 대군을 이끌고 대야성을 쳐들어 왔을때 성주 김품석은 주색에 빠져 정사를 외면하고 있었으며 부하 가운데는 적과 내통하는 무리가 있어 성은 함락 직전에 놓여 있었다. 이에 젊은 용사 죽죽은 전우 용석과 함께 성문을 굳게 닫고 남은 병사를 이끌고 용감히 싸웠으나 끝내 성은 함락되고 두 화랑의 선혈은 대야성을 붉게 물들였다. 이 슬픈 소식을 듣고 선덕여왕과 김품석의 장인 김춘추는 백제 정벌의 비장한 결의를 다짐하게 되었으며 이에 힘입은 신라 화랑들의 궐기는 훗날 삼국통일을 이룩하게 하였으니 신라 충신 죽죽의 장엄한 전사야말로 통일신라의 채찍으로서 청사에 기리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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