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범어사 석등 - 신라의 의상대사가 범어사 삼층석탑을 건립한 3년 후인...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금정구 청룡동

이 석등은 신라의 의상대사< 義湘大師 >가 범어사< 梵魚寺 > 삼층석탑< 三層石塔 >을 건립한 3년 후인 문무왕< 文武王 > 18년(678)에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온다.
옥개석< 屋蓋石 >과 화사석< 火舍石 >·상대석< 上臺石 >·간주석< 竿柱石 >·하대석< 下臺石 >이 모두 팔각형을 기본으로 한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 석등< 石燈 >의 전형양식에 속하는 작품이다.
대체로 석등은 금당< 金堂 >이나 탑 앞에 놓이는데, 이 석등도 원래는 용화전< 龍華殿 > 앞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 日帝時代 >에 지금 석등이 있는 자리에 있던 종루< 鐘樓 >를 옮기고, 그 자리에 석등을 옮긴 것이다.
석등을 금당이나 탑 앞에 두는 것은, 사람이 운명하는 순간에 등을 밝히면 삼종명을 얻고 죽은 자를 위하여 탑묘제불 앞에 등을 밝히면 삼십삼천< 三十三千 >에 태어나며 다섯가지 청정< 淸淨 >을 얻는다는 것 등이 지혜·해탈·자비·선행·청정·재생 등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석등은 금당< 金堂 >이나 탑과 함께 사찰의 중심부에 놓이며, 정성을 모아 조성되었던 것이다.
이 석등은 하대석의 복련< 覆蓮 >이나 상대석의 앙련< 仰蓮 >이 모두 겹꽃으로 꽃잎이 8잎인데, 꽃잎이 단엽인 것이 쌍엽인 불국사< 佛國寺 > 석등과 다를 뿐, 불국사 석등과 같은 형식에 속한다.
그러나 이 석등은 후대에 보완된 간주석< 竿柱石 >이 너무 빈약하여 전체적 조화를 잃었고, 상륜부의 부재들이 없어졌으며, 옥개석 위에 얹힌 노반< 露盤 >은 제 짝이 아니다.





[대중교통]
부산역: 지하철을 타고 범어사역에서 하차하여 가면됨(범어사 순환버스 있슴)
구포역: 48, 148을 타고 종점에서 범어사까지 올라가면됨(범어사 순환버스 있슴)
고속터미널: (좌석)301, 80-1을 타고 범어사까지 가면됨(범어사 순환버스 있슴)
동부터미널: 길건너서 지하철을 타고 범어사역까지 가면됨 (참고: 터미널 뒤쪽으로 가면 80-1, (좌석)301 을 타고 가면됨)(범어사 순환버스 있슴)
서부터미널: 15, 33, 32, 59, 66, 69-1, 75, 110, 110-1, 120, 128, 133, 160을 타고 구포역에서 하차하여
48, 148을 타고 종점에서 하차후 가면됨(범어사 순환버스 있슴)
공항: (좌석)307, 307-1을 타고 구포역에서 하차할 경우 48, 148을 타면되고
고속터미널에서 하차할 경우 80-1, (좌석)301을 타고 가면됨 (범어사 순환버스 있슴)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