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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서당 - 채명보선생이 정자를 짓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

by 넥스루비 2007. 8. 7.
대구 동구 미대동 169

이곳은 조선< 朝鮮 > 인조< 仁祖 > 때의 선비 채명보< 蔡明輔 >(1574∼1644) 선생이 정자< 亭子 >를 짓고 만년< 晩年 >에 학문을 강론< 講論 >하던 곳이다. 그 뒤 후손들이 선행의 높은 덕행< 德行 >을 널리 기리고자 새로 수축하고 그 이름을 성재서당이라 개칭하였다. 선생의 휘< 諱 >는 선견< 先見 >이며 자< 字 >는 명보요 호< 號 >는 양전헌< 兩傳軒 >이며 본관< 本貫 >은 인천< 仁川 >으로 채응린< 蔡應麟 >의 다섯째 아들이다. 어려서 지산< 芝山 > 조호익< 曺好益 > 선생과 한강< 寒崗 > 정구< 鄭逑 > 양문하< 兩門下 >에서 수학하였다. 광해군< 光海君 > 9년(1617) 생원시< 生員試 >에 합격하였다. 그후 서궁유폐사건< 西宮幽閉事件 >이 일어나자 마을 선배들과 함께 상소< 上疏 >를 올려 잘못된 점을 지적하였다. 인조< 仁祖 > 2년(1624) 이괄< 李适 >이 난을 일으키자 발분창의< 發憤倡義 >하여 향병< 鄕兵 >을 모집하고 군량미< 軍糧米 >를 수집하였다. 인조 4년(1626)에는 희릉참봉< 禧陵參奉 >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귀향하여 이곳에 성재정< 盛才亭 >을 짓고 선비들과 학문을 강론하면서 만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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