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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 우리나라 개항 당시의 사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남구 대연동 948-1

이 비는 조선< 朝鮮 > 말기< 末期 >에 대원군< 大院君 >이 펼친 쇄국정책< 鎖國政策 >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문의 내용은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 和親 >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임을 온 백성에게 경계한다.
병인년< 丙寅年 >에 지어 신미년< 辛未年 >에 세움"이다.
전국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이 비는 조선 말기에 서양< 西洋 >의 열강< 列强 >들이 무력< 武力 >을 앞세워 문호< 門戶 >의 개방< 開放 >을 요구하고 엄청난 힘으로 밀어닥치자 당시 섭정( 攝政 )의 자리에 있던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은 이들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는 길은 쇄국정책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세운 것이다.
이 비문을 지은 병인년(1866)에는 천주교< 天主敎 >에 대한 탄압이 도화선< 導火線 >이 되어 병인양요< 丙寅洋擾 >가 발생하였고, 비를 만들어 세운 신미년(1871)에는 대동강< 大洞江 >을 거슬러 평양< 平壤 >까지 이르러 야만적인 방법으로 통상을 시도하던 제너럴 셔어먼호를 불태운 사건을 핑계로 로저스제독이 이끄는 미국군함< 美國軍艦 >이 강화도< 江華島 >에 침입한 신미양요< 辛未洋擾 >가 발생하였다.
이 비는 고종< 高宗 > 8년(1871)에 부산진< 釜山鎭 > 성지< 城址 >에 세웠던 것을 1924년 용두산공원< 龍頭山公園 >으로 옮겼다가 1978년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대중교통]
1.부산대방면:51번
2.서면방면:68,24,25,93번
3.부산역방면:134,27번
4.그외: 20,34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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