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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및이수 - 보물 6호인 귀부 와 이수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7-3

이 귀부< 龜跌 >와 이수< 이首 >는 『혜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비< 慧目山高達禪院國師元宗大師之碑 >』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석< 碑身石 > 위에 얹혔던 이수이다. 비는 일찍이 무너져 신석< 身石 >은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에 옮겨져, 현재는 경복궁< 景福宮 > 근정전< 勤政殿 > 서쪽화랑< 西廻廊 >에 진열되어 있으며 이곳 고달선원< 高達禪院 >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비문< 碑文 >에 의하면 원종대사< 元宗大師 >는 신라< 新羅 > 경문왕< 景文王 > 9년(869) 13세에 출가하여 상주< 尙州 > 공산< 公山 > 삼랑사< 三郞寺 >에서 융제선사< 融諦禪師 >에게 사사< 師事 >하였다. 22세에 양주< 楊州 > 삼각산< 三角山 > 장의사< 藏義寺 >에서 구족계< 具足戒 >를 받았고 23세에 입당< 入唐 >하여 서주< 舒州 > 동성현< 桐城縣 > 적주산< 寂住山 >에서 자선화상< 子禪和尙 >에게 사사< 師事 >하였으며 경명왕< 景明王 > 5년(921)에 환국< 還國 >하여 봉림사< 鳳林寺 >에 거주< 居住 >하였다. 그후 광주< 廣州 > 천왕사< 天王寺 >에서 고려< 高麗 > 광종< 光宗 > 9년(958) 8월에 90세로 입적< 入寂 >하니 왕이 애도< 哀悼 >하여 원종대사< 元宗大師 > 혜진< 慧眞 >이라 추시< 追諡 >하고 '진영일정< 眞影一幀 >'을 그리게 하였으며 대사< 大師 > 입적 후 17년에 이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귀부< 龜跌 >는 거대한 단일석< 單一石 >으로 조성되고 6각 귀갑문< 龜甲紋 >이 장식되어 있으며 장방형< 長方形 >의 비좌< 碑座 >는 운문< 雲紋 >이 새겨져 있는 연화좌< 蓮華座 > 위에 조출< 彫出 >되고 상면< 上面 > 둘레에는 복련문< 覆蓮文 > 이 조출되어 있다. 네 다리와 손톱 끝의 조형은 사실적이며 예리하나 귀두< 龜頭 >의 면모< 面貌 >는 흔히 볼 수 있는 용형< 龍形 >이다. 이수< 이首 >는 구름과 용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상에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보주< 寶珠 >가 꽂혔던 흔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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