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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강순항정려각 - 강순항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국가가 효자로 정표한 것...

by 넥스루비 2007. 8. 7.
대구 동구 평광동 1180-5

이 정려각< 旌閭閣 >이 위치한 동구< 東區 > 평광동< 平廣洞 >은 150여호가 거주하는 큰 마을로서 전근대 사회에서는 여러 성씨< 姓氏 >가 잡거< 雜居 >해 왔으며, 진주< 晋州 > 강씨< 姜氏 >들은 조선 후기에 입거< 入居 > 10여호가 거주하였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이래 도시지역의 확장과 더불어 외지인< 外地人 >의 입거< 入居 >가 심하게 일어나고 농촌 지역이 도시지역으로 급격하게 변모되고 있다. 이 정려각은 조선후기의 인물인 효자< 孝子 > 강순항< 姜順恒 > (1745∼183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국가가 효자로 정표< 旌表 >한 것을 계기로 제작한 정려 현판 및 정려각이다. 현판의 내용은 "효자숭정대부행동지중추부사강순황지각 숭정기원후사을미십일월 일"< 孝子崇政大夫行同知中樞副事姜順恒之閣 崇禎紀元後四乙未十一月 日 >이고, 정려각은 1830년(순조 30)에 그의 아들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인 강순항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여러 가지의 이적< 異蹟 >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극빈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50여년간 부모에게 지극한 효행을 행하여 향리인< 鄕里人 >들의 칭송을 들었다. 1816년(순조 16) 경상도관찰사 이존수< 李存秀 >의 건의에 의해 통정대부에 임명되는 동시에 효자로서 포상을 받아 정려현판< 旌閭懸板 >이 내려졌다. 이어서 1830년(순조 30)에는 나이가 100세에 달해 숭정대부동지중추부사< 崇政大夫同知中樞副事 >에 임명되었고, 이에 따라 그의 부인 및 조상 三代가 각종 관직을 추증받게 되었다. 그 외 강순항에 관련된 자료로는 1822년(순조 22) 강순항의 효행을 포상하고 각종 역< 役 >을 면해준 예조< 禮曹 >의 입안< 立案 >, 1830년의 숭정대부동지중추부사< 崇政大夫同知中樞副事 > 임명 교지< 敎旨 >와 이에 따른 그의 부인 박씨< 朴氏 >의 정부인< 貞夫人 > 임명, 그의 아버지 절충장군< 折衝將軍 > 강헌석< 姜憲碩 >의 증직, 그의 어머니 金氏의 중직, 할아버지 학생< 學生 > 강백화< 姜百華 >의 증직, 할머니 崔氏의 증직, 증조부모 증직 등에 대한 교지 9件, 1841년(헌종 7) 禮曹 立案 등이 있다. 그 외 정려각의 정면에는 후손들에 의한 기문< 記文 > 4점< 4點 >이 하나의 현판< 懸板 >으로 제작되어 게시되어 있다(113cm×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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