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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정자들 - 한글 가사문학의 산실

by 넥스루비 2007. 8. 7.
옛부터 담양(潭陽)을 가리켜 죽향(竹鄕)이라 이르고 주변에 40여개의 정자 건물이 세워져 시인묵객의 쉼터로, 학문의 수양처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 가운데 특히 16,17세기에 경영된 정자와 정원들은 이 나라 유학사에 큰 획을 그어 온 인물들의 발자취로서 후대에까지 널리 알려져 귀감이 되고 있다.

「면앙정가」와 「사미인곡」등의 무대인 면앙정, 송강정, 명옥헌,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등은 이들이 경영한 수양처로서 한글 가사문학의 산실로서 보다 친숙해져 있다.

이른바 '백리형국(百里形局)'으로 일컬어 오는 담양과 광주, 창평의 세 고을들은 무등산을 잇는 산록들이 병풍처럼 감싸는 남쪽 넓은 들녘(창평들)에 자리 잡고 있어 담양천과 청계천, 오례강과 송강이 들녘을 적시며 비옥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자연적인 요건들은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지닐 수 있게 하였고 이곳에 모여드는 재사들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제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으며 이들과의 친교를 통해 중앙정계로 발돋움하려는 유림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게 되었을 터이다.

담양군 남면일대 특히 광주호 상류부근은 무릉산에 가장 가깝고 별뫼(別山)라는 아담한 산을 뒤로 끼고 있으면서 특별한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별뫼 일대에는 중앙정계로부터 낙향하거나 절연한 유학자들이 은거하는 생활공간이었다.
특이한 정자와 원림(園林)들이 조영되었으니 기양할 수 없는 정계복귀자와 사면자들은 자연속에 묻혀 유유자적하며 지냈다. 이른바 별서(別墅) 혹은 별업(別業), 별제(別第)이다.

별서란 살고 있는 살림집 외에 경치좋은 터를 골라 따로 마련한 일종의 별장으로 보통의 경우 자신의 시골집 인근에 원림을 조성하고 정자건물을 세우는 형식을 취한다.
가운데 방에는 온돌을 설치하여 거숙과 휴양을 같이하는 일상의 생활터가 되게 하였다.

경상도의 명승을 즐기며 여흥을 위한 경승정자와는 달리 별서의 정자에서는 살림채에서 날라 온 밥을 먹고 손님을 맞으며 공부도 하고 잠도 자며 수양하던 별당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별서지역을 대표하는 원림으로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꼽는다.
이 세 원림은 자미탄(紫薇灘, 환벽당과 식영정을 잇는 구름다리 아래 양길섶에 심어놓은 배롱나무가 있는 내라고 붙인 이름)을 중심으로 2㎞ 이내에 위치하며 환벽당과 식영정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다보일만큼 가까운 거리이다.

이 세 원림은 같은 시기인 15세기 중반에 경영되어 활발한 인적교류를 통해 예술적 향기가 높은 문학작품들의 산실이 되었다. 정철의 <성산별곡>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문학 그룹은 「성산가단(星山歌壇)」이라 지칭하고 이 지역을 「가사문학권」이라 이름 붙였다.
소쇄원은 이러한 별뫼의 남쪽 골짜기에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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