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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호국원찰

by 넥스루비 2007. 8. 7.
송광사는 신라 진평왕 5년(583)에 터를 잡았다.
867년(신라 경문왕7)에 9산선문 중 도의국사의 가지산파 제3조인 보조 체징국사(804-880)에 의해서 개창 되었다고 한다.
그후 폐허화되었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지눌 보조국사(1158-1210)가 이곳을 지나다가 영천(靈泉)의 물을 마신 뒤 뒷날에 큰 절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여 샘 주위에 돌을 쌓아 두었다가 제자를 시켜 뒷날 그 자리에 절을 중창하도록 당부하였다.

조선조에는 벽계 정심선사가 수행하던 명찰이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1622년(광해군 14)에 응호(應浩), 승명(勝明), 운정(雲淨), 덕림(德林), 득순(得淳), 홍신(弘信) 등이 이극룡의 시주를 얻어서 중창하였다.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 인조대왕이 두 왕세자의 무사 환국과 국란의 아픔을 부처님의 가호로써 치유하고자 대대적으로 중창한 인조대왕의 호국원찰이다.

중창후 조선중기의 승병장(勝兵將)으로 활약이 컸던 벽암 각성선사(1575-1660)를 초빙하여 50일동안 화엄법회를 열었는데, 이때 전국에서 수천인이 모여서 시주를 하였고 이로써 1636(인조 14)에 이르기까지 계속 큰 불사를 벌여 대가람을 이룩하게 되었다.
당시 대웅전은 2층 건물이었고 일주문은 절 남쪽 3㎞ 지점의 만수교 앞에 세워졌다고 하니 가람의 경내가 아주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의 유래는 전하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응진전, 약사전, 관음전, 칠성각, 십자각, 천왕문, 금강문, 일주문 등이 있고 근래에 신축한 큰 불전 지장전이 있다.

[승용차]
●전주 (진안 방향 26번 국도) -> 소양면 -> 마수교 -> 송광사

[대중교통]
●전주 모래내 시장 버스정류장 14-1, 37, 38, 86, 120번 시내버스 이용 송광사 하차
(25분 간격 운행 /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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