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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의은행나무 - 우리나라 노거수의 대표적인 존재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1∼2리 산99-1

수령<樹齡>은 1100년 되었으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60m, 가슴높이의 둘레가 14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14.1m, 서쪽이 14m, 남쪽이 12m, 북쪽이 16.4m이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노거수의 대표적인 존재인데 그것은 수령과 수고에 있어서 가장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고 또 전설이 담겨 있는데 있다. 이 나무가 용문사 경내에 서 있는데 배수가 잘 될 수 있는 적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줄기 아랫쪽에 혹과 같은 큰 돌기가 나있는 것이 특징의 하나이다. 이 나무에는 얽힌 전설이 많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 때 태자<太子>였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서러움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손수 심었다고 말이 있는가 하면 역시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그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이 은행나무로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것은 삽목신화의 하나로서 세계 각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神德王> 2년 대경대사<大鏡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그때가 서기 913년에 해당한다. 또 한편으로는 경순왕이 친히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을 고려할 때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약 천년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의 수령이 천년을 넘는지라 그동안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각종 피해를 입었을 것이 짐작된다. 그러한 역경을 거쳐오면서 오늘날의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가령 정미 의병<丁未 義兵>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인들이 절에 불을 놓았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해를 면했다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방화수<防火樹>로 잘 알려지고 있는 터이다. 그때 사천왕전<四天王殿>이 불타버렸는데 이 은행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이 나무에 대한 전설은 더 있다. 즉 나라에 큰일이 있다던가 변고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이 나무는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다고 한다. 나무가 소리를 낸다는 말은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종<高宗>께서 승하하였을 때에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고자 톱을 대는 순간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는 말도 있다. 조선조 세종<世宗>때 당상직첩<堂上職牒>이란 벼슬자리가 이 나무에 주어졌는데 그 위계는 정삼품<正三品> 보다 더 높은 것이였다. 약 60년전 이 나무에 대한 측정치를 보면 목고간주위<目高幹周圍>가 약 10.3m, 수고 약 41m, 그리고 줄기는 지상 12m쯤 되는 곳에서 3갈래로 분기했으며 수령은 천년을 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의 수고가 약 60m인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숫자에 잘못된 점이 있는 것 같다. 용문사의 명물인 이 나무를 찾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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