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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소놀이굿 - 오늘날의 연희형태를 확립하여 전승되어온 굿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도 양주시

소굿·쇠굿·소놀음굿·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는 양주소놀이굿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현지의 연희자들 사이에는 그 유래에 관하여 여러 설이 구전되어 오는데 양주지방의 감악사< 紺岳祠 > 유래설, 풍년기원설, 소장수 번성기원설, 궁중의례 유래설, 굿 여흥설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양주소놀이굿의 어떤 성격을 말해주고 있으나 직접적인 기원으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소놀이굿은 양주뿐아니라 서울·경기·강원·충청·황해·평안남도 등의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놀아지던 것이다. 그것은 경사< 慶事 >굿 내지 재수굿 류의 제석거리에 붙여 진행되는 일종의 부속거리이다. 제석거리는 자손창성과 수명장수를 빌고 제석항아리는 곡신< 穀神 >적 성격을 띤다. 소놀이굿이나 제석거리에서는 농경의례와 관련되어 있다. 소를 위하고 또 제물로 쓰던 전통적 신앙관념이 조선왕조에 들어와 재수굿에 수용되고 그 성격상 제석거리에 부속되어 놀아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소놀이굿은 그러면서 점차 각종 타령과 놀이를 갖추고 조선조 후기에 오늘날의 연희형태를 확립하여 전승되어 왔을 것이다. 양주소놀이굿은 양주의 무부< 巫夫 > 팽수천< 彭壽天, 1901~1937 >에 의해 이 지역에 전승되었다. 그의 곁마부< 馬夫 >로서 마부타령을 배운 백석면< 白石面 >의 우용진< 禹龍辰 >, 남면< 南面 >의 고관성< 高寬成 >·오복삼< 吳福三 > 등이 작고하고 우용진에게서 배운 조만봉< 趙萬奉 >도 타계하였으며, 그의 곁마부역을 맡던 김인기< 金仁起 >와 악사 고희정< 高熙貞 >이 보유자로 전승하고 있다. 제석거리가 끝나면 장고 앞의 목두< 木斗 >에 콩을 수북히 담고 북어 한 마리를 거기에 꽂아 소고삐를 맬 말뚝으로 삼는다. 악사와 장고를 맡은 조무< 助巫 >가 마당을 향해 앉고, 굿거리장단이 울리면 흰고깔에 흰장삼을 차린 주무< 主巫 >가 오른손에 제석부채를 들고 마루 끝에 선다. 송아지가 먼저 들어와 놀다가 대문께로 가서는 마부와 소를 인도해 들인다. 고무래를 짚으로 싸서 머리를 만들고 멍석을 반으로 접은 속에 5·6인이 들어가 소를 가장한다. 송아지는 한 사람이 짚멍석을 뒤집어 쓰고 논다. 마부에는 원마부와 곁마부가 있는데 원마부는 검은 전립에 남색 전복을 입고, 오른손에 삼신부채, 왼손에 고삐를 쥔다. 소놀이굿은 무당과 마부와의 대화, 마부의 타령과 덕담 및 춤과 동작, 소의 동작 등으로 엮어지고 연희의 구성이 갖춰있다. 참여자는 무당과 마부 외에 악사와 조무, 곁마부, 만든 소와 구경꾼들이다. 마부가 부르는 타령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누가 나를 찾나), (마부 노정기< 路程記 >), (보물타령), (마부 대령 인사), (소의 머리 치레), (절< 寺 >타령), (소뿔 치레), (소귀 치레), (소눈 치레), (소입 치레), (소이 치레), (소혀 치레), (소꼬리 치레), (소다리 치레), (소굽 치레), (소모색< 毛色 > 치레), (소 글 가르치기), (마부 복식 치레), (소의 굴레 치레), (잡곡타령), (소 흥정타령), (말뚝타령), (소장수 마누라 타령), (성주풀이), (축원과 덕담), (살풀이)의 순서로 불려진다. 무당과 마부의 사설이 사이사이에 끼인다. 소놀이굿에 서사적인 줄거리는 없다. 그것은 소리대목의 연속이지만, 무당이 소장수를 찾고 마부가 (누가 나를 찾나) 타령을 부르는 것에서 시작하여 소의 신체 각 부위의 치레를 늘어놓고 소 흥정이 있은 후 끝으로 축원과 살풀이를 행하는 일정한 구조를 갖는다. 소놀이굿은 굿거리의 부속형태로 놀아지는 것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발전된 연희이다. 그리고 타령들은 잡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극히 세련된 평민 가사체의 노래로서 문학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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