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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 - 2만평 위에 조성됐던 동양 최대의 사찰

by 넥스루비 2007. 8. 7.

경주 안압지 동쪽에 있는 신라 최대의 절터. 사찰 경내만 2만평에 달한 것으로 밝혀져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 진흥왕 때 절을 짓기 시작하여 93년만에 절을 완전히 다 지었다고 한다. 원래 진흥왕은 이 곳에 새 궁궐을 지으려고 했는데 공사 도중 황룡이 출현하여 절로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절 이름 역시 황룡이 출현했던 곳이라는 뜻.

사라진 황룡사 문화재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9층목탑.
선덕여왕 12년(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의 권유로 만들어졌다는 9층목탑은 전체 높이가 80m, 바닥 면적이 150평에 달했다고 한다. 9층목탑은 고려시대 몽고 칩입(1234년) 때 불 타 버렸다.

황룡사에는 금동삼존장륙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장륙상이란 부처의 등신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높이가 1장6척, 즉 4.8m에 달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인도의 아육(아소카)왕이 구리 5만 7,000근, 황금 4만푼분로 석가삼존 불상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아육왕은 황금과 구리 그리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내 인연이 닿는 나라에 가서 조성되기를 빌었는데 배가 신라 울산 근처 바닷가에 도착했다고 한다. 신라는 한번에 삼존불상을 완성했는데 본존상의 무게만 3만 5,000근에 황금 1만 198푼이 들었고 두 보살의 무게는 1만 2,000근에 황금 1만 136푼이 들어다고 한다. 이들 불상을 모시기 위하여 금당을 고쳐지어 584년에 완공하였다고 하며 이 들 금동장륙상을 안치했던 자리는 지금도 볼 수 있다.

당시 신라에 있었다는 3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天賜玉帶)를 제외한 2가지 보물이 9층목탑과 장륙존상이었다는 것에서 황룡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금당에는 참새가 진짜 나무인줄 알고 날라와 앉으려다 머리를 부딪혔다는 유명한 솔거의 벽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 곳에 있었다는 종은 구리 50만근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 전해지고 있는 범종 중 가장 큰 성덕대왕신종보다 무려 4배나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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