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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 - 푸른 대숲에 둘러싸여 있는 송강 정철이 어렸을 때 지냈던 곳

by 넥스루비 2007. 8. 7.
광주 북구 충효동 387

행정구역은 광주시이지만 소쇄원과 식영정에서 자미탄(紫薇灘)을 건너 왼편 언덕에 있는 조선시대 누정.
가사문학의 거장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의 행적과 관련된 유적으로 송강정(松江亭), 식영정(息影亭)과 더불어 정송강 유적으로 불린다. 환벽당은 중종때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교리를 거쳐 나주목사를 지낸 사촌 김윤제(金允悌, 1510∼1572)가 그의 살림집 뒷산에 지은 별서정자이다.

현재 환벽당 아래 넓은 풀밭이 원래 살림집터다.
환벽당은 비스듬한 비탈에 자연석 축대를 쌓고 남향으로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동쪽 2칸은 마루이며 서쪽 1칸은 방으로 꾸며졌으며 그 앞 빈 칸에 툇마루를 놓았다. 원래는 정각형(亭閣形)으로 되어있었으나 후대에 중건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다.
원래 푸른 대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환벽당이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대숲은 없고 비탈과 앞쪽 축대 아래의 커다란 배룡나무가 인상적이다.

환벽당 주인 김윤제는 물건너 식영정 주인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과 무지개 다리를 통해서 서로 내왕하였다 하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환벽당은 송강 정철이 어렸을 때 유숙하며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여년간 공부하던 곳이다. 정철은 27세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스승 김윤제를 비롯한 어른들의 교육과 보살핌을 받았다.

이 정자에는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어느날 사촌 김윤제가 이곳에서 낮잠을 자다가 조대(釣臺)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 보니 미역을 감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곁에 두고 가르침을 내리게 되었으니 이 소년이 정철이다.
소년 정철은 이때(16세) 화순 동복에 살고 있는 누이집으로 가는 도중 환벽당 밑 창계천에서 목욕을 하던 중이었으며 정철을 기른 김윤제는 훗날 그의 외손녀를 정철과 결혼시키게 된다.

환벽당에 들어서면 우암 송시열(尤庵 宋詩烈, 1607∼1689)의 글씨 현판과,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 1496∼1568)의 시와 조자이(趙子以)의 시가 벽에 걸려있다.

한편 환벽당에 들어서기 전 얕은 대문 앞에는 조대쌍송(釣臺雙松)비가 있고 자연석에 조대(釣臺)라 새겨 설명도 곁들여 있다.
「이 낚시터는 옆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와 함께 조대쌍송으로 알려진 곳. 그 아래 흐르는 창계(蒼溪)의 물은 소(沼)를 이루고 여기서 뱃놀이도 행해졌다. 조선조 명종때 임억령 등 성산의 사선이 조대쌍송, 환벽용추(環碧龍湫) 등의 시를 이음으로써 더욱 유명해 졌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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