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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흥륜사 - 신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사찰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사정동 281-1

흥륜사는 신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사찰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264년(미추왕 3)에 고구려 승려인 아도가 공주의 병을 고쳐주고 왕의 허락을 받아 칠처가람지허<七處伽藍之墟>의 하나인 천경림<天鏡林>인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초기의 절은 규모가 크지 않아 초가집을 짓고 불법을 강연하는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절을 짓도록 허락한 왕이 죽자 곡 페허화되었다. 또 초창기 절의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이와 다른 학설이 있으며 눌지왕(417-457년)대에 창건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후 527년(법흥왕 14) 이차돈이 순교하자 그의 이적에 놀라서 533년부터 중창을 시작하여 544년(진흥왕 5)에 완공하였다. 절이 완공되자 진흥왕은 이 절을 대왕흥륜사라 이름하고 백성들이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자신도 만년에는 법운<法雲>이라는 법명을 받고 이절의 주지가 되었다. 그 뒤 흥륜사는 대법회를 주관하고 왕실과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중심 도량이 되었으며 매년 사월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금당 앞의 탑 주위를 돌며 염불을 하는 복회가 열렸다. 삼국유사에는 흥륜사와 관련하여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의 어머니가 밭을 시주하고 김대성이 재상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는 설화와 김현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었다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또 금당 안에는 선덕여왕 때 김양도<金良圖>가 조성하여 봉안한 미륵삼존상이 있었고, 금당의 동쪽 벽에는 아도·이차돈·혜숙<惠宿>·안함<安含>의 상이, 서벽에는 표훈<表訓>·원효·혜공<惠空>·자장·사파<蛇巴> 등 10명의 고승을 진흙으로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 신라 말 반란군이 불을 질러 불탄 것을 921년(경명왕 5)에 중수했는데 제석천이 수리를 도와주었는데 그 모습을 그리려하자 보현보살의 원력이 자신의 도움보다 크다 하여 보현보살을 그리게 하였다는 설화도 있다. 고려시대에도 왕실의 도움을 받아 번창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화재로 불에 탄 것을 복구하지 못하고 폐사가 되었다. 폐사가 된 다음 절터에는 석조와 배례석 등의 석물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경주부윤이 이를 동헌으로 옮겨간 것을,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석조는 남아 있는 신라시대 석조 중 가장 큰 것으로 길이 2.3m, 너비 1.1m에 이른다. 또 일제시대에 이 절터에서 출토된 사람얼굴무늬가 있는 수막새는 일제때 반출되었다가 1972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는데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미소를 짓고 있다. 1972년과 77년에 발굴조사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금당지의 앞에서 8각탑이 있었던 자리와 동쪽에서 회랑지가 확인되었다. 가람배치는 분명하지 않으나 8각탑을 중심으로 금당이 있고 금당의 좌우에는 익랑이 있으며 서쪽에 경루가 있다. 흥륜사의 남문은 길달문<吉達門>이라고 불렸는데 귀신인 길달이 지었다고 하여 그같이 이름하였다고 한다. 절터에는 1980년대에 새로 지은 흥륜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영묘사<靈廟寺>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선덕여왕때 창건한 영묘사터로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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