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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릉 - 석조물들의 조각이 매우 우수한 원성왕릉 본문

문화ㆍ행사

괘릉 - 석조물들의 조각이 매우 우수한 원성왕릉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 8. 7. 00:09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17

통일신라의 38대 원성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 경주에서 울산가는 국도변 왼쪽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괘릉이란 뜻은 '능을 걸다'라는 의미인데 이곳에 왕릉이 조성되기 이전에 작은 연못이 있어서 그곳을 메우고 능을 마련하였는데 능 내부인 현실에 물이 고이기 때문에 바닥에 관을 놓지 못하고 허공에 걸어 안장하였다는 속설이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 괘릉은 봉분과 그 전방의 석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능의 구조는 외형상 원형토분이며 지름이 약 23m, 높이가 약 6m 규모이다. 봉분아래에는 봉토를 보호하기 위한 호석이 설치되어 있다.
호석은 목조건축의 석조기단과 같이 지대석 위에 높이 95m, 길이 120cm 크기의 판석으로 된 면석을 놓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렸다.
각 면석 사이에는 봉분 내부로 뿌리가 길게 뻗어 면석과 봉토가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탱석을 배치하였는데 탱석의 전면은 면석보다 약간 앞으로 내밀어져 있다.
탱석에는 두칸 건너서 하나씩 무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그 조각수법이 신라 십이지신상의 조각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호석의 밖 왕릉의 둘레에는 길이 110cm, 너비 40cm의 부채꼴 판석을 질서정연하게 깐 회랑이 왕릉을 두르고 있으며 판석 밖 회랑 둘레에는 높이가 1.7m 되는 네모 돌기둥 25개를 세우고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현재 돌기둥은 모두 남아 있으나 돌기둥 사이 사이에 2단으로 게웠던 난간살대는 거의 유실되고 없어져서 새로이 마련해 설치해 두었다.
봉분의 바로 앞에는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사각형 석상(石床)인 혼유석이 놓여있고 봉분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80m 떨어진 위치로부터 시작하여 동서로 약 25m 사이를 두고 북쪽으로 부터 돌사자 두 쌍, 관검석인(冠劍石人) 모습인 문인석(文人石) 한 쌍, 서역인(西域人) 모습인 무인석(武人石) 한 쌍과 화표석(華表石) 한 쌍이 마주 대하고 차례로 늘어서 있다.

이 석조물들의 조각수법은 매우 당당하고 치밀하여 이와 같은 유형의 신라 조각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특히 힘이 넘치는 모습의 무인상은 서역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주목되는데 아라비아계통의 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주장도 있다.
통일신라 왕릉의 대표격인 이 괘릉의 능묘제도는 당나라와의 문물 교류를 통하여 당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나 십이지신상이나 석사자 등을 호석에 배치하는 것은 성덕왕릉의 예와 같이 신라인의 창안이며 각종 석조물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조각수법은 당시 신라인의 고도로 발달한 예술적 경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특히 능묘에 배치된 십이진신상은 따로 조각하여 호석앞에 별도로 세웠던 성덕왕릉식에서 탱석에 직접 조각하는 형식으로 발전된 것이라 판단된다.

※원성왕(元聖王, ?~798)

신라 제38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785∼798년이다. 성은 김(金), 이름은 경신(敬信, 敬愼, 敬則), 내물왕(奈勿王 262∼284)의 12세손이며 비(妃)는 숙정부인 김씨(淑貞夫人 金氏)로 각간(角干) 신술(神術)의 딸이다. 왕위에 오르기전인 780년(혜공왕 16). 뒷날 선덕왕이 된 상대등(上大等) 양상(良相)과 더불어 지정(志貞)의 난을 진압하였으며 이때에 혜공왕을 살해하고 양상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그는 양상(선덕왕)과 밀착된 인물로서 경덕왕 이래 왕실의 전제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으로 상대등이 된 김경신은 그 뒤 선덕왕이 자식이 없이 죽자 태종무열왕의 세손인 김주원(金周元)과의 왕위 다툼에서 승리하여 즉위하였다.

788년에는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하여 유교경전에 능한 사람을 3품으로 나누어 실력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므로 국학(國學)을 설치한 지 이미 1세기가 지난 당시 신라사회의 무인(武人) 중심의 관리등용에 획기적인 개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원성왕은 왕실 친족집단에 의한 권력장악으로 하대(下代) 권력구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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