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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유묵 - 안중근의사의 정신수양과 한학에 대한 깊은 소양을 엿볼 수...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중구 대청동1가 22

한말의 독립투사였던 안중근 의사가 만주의 여순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할 때까지 쓴 200여점의 글씨 가운데 한점으로 [견리사의견위수명] 의 8자인데, [의로운 것을 보았을 때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는 목숨을 바쳐라]는 뜻이다.
이 작품과 다른 여러 곳에 수장 되어있는 20점이 보물 제 569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는데, 이들 글씨에는 장렬한 최후를 앞에 둔 애국지사의 충혼과 강인한 의지가 힘차고 활달한 필치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그의 유묵에서는 서명부분에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 쓰고 혈서로 인하여 한 손마디가 없는 장인을 인장으로 대용하고 있는 점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와 같은 독특한 서명 역시 그의 기개와 충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안중근(1879-1910)은 황래도 해주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한학을 배우고, 승마 궁술을 익혀 문무를 겸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1907년 7월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다가 북간도를 거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망명하였다.
1909년 10월 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이 하르빈에서 러시아 대장상 코코프체프와 최담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0월26일 하을빈역에서 일본인으로 가장하여 들어가 권총 3발로 이등박문을 쏘아 죽였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여순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이듬해 3월26일에 사형되었다.


[대중교통]
지하철 중앙동역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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