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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사 - 송시열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여주군 여주읍 하1∼3리 200-1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학자< 學者 >이며 명신< 名臣 >인 우암< 尤庵 > 송시열< 宋時烈 >(1607∼1689) 선생의 영정< 影幀 >을 모신 사당< 祠堂 >으로 정조< 正祖 > 9년(1785) 왕이 영녕릉< 英寧陵 >에 참배< 參拜 >오셨다가 김양행< 金亮行 > 등 유신< 儒臣 >에게 명하여 건립하게 하고 대로사< 大老祠 >라 사액< 賜額 >하였으나 고종< 高宗 > 10년(1873) 10월 강한사라 개칭하였다. 사당의 방향은 서쪽에 위치한 효종대왕릉< 孝宗大王陵 >을 향하고 있다. 우암은 인조< 仁祖 > 11년(1633) 생원시< 生員試 >에 합격하여 경릉참봉< 敬陵參奉 >을 거쳐 봉림대군< 鳳林大君 >의 사부< 師傅 >가 되었으며 후일 효종의 총애를 받았다. 효종 9년(1658) 이조판서< 吏曹判書 >에 승진되어 북벌계획< 北伐計劃 >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우의정< 右議政 >을 거쳐 현종< 顯宗 > 13년(1672) 좌의정< 左議政 >이 되었다. 현종 15년(1674) 자의대비< 慈懿大妃 >의 복상< 服喪 >문제로 일시 유배< 流配 >되었다가 남인< 南人 >이 실각하자 영중추부사< 領中樞府事 >로 기용되었으며 숙종< 肅宗 > 9년(1683) 봉조하< 奉朝賀 >가 되었고 노론< 老論 >의 영수< 領袖 >가 되었다. 그후 정계에서 은퇴하여 청주< 淸州 > 화양동< 華陽洞 >에서 은거< 隱居 >하였으며, 숙종 15년(1689) 왕세자< 王世子 >(경종< 景宗 > > 책봉< 冊封 > 문제로 상소< 上疏 >를 했다가 제주< 濟州 >에 유배되었다. 그 뒤 국문< 鞫問 >을 받기 위해 상경< 上京 > 도중 남인의 책동으로 정읍< 井邑 >에서 사사< 賜死 >되었다. 일생< 一生 >을 주자학< 朱子學 > 연구에 몰두한 거유< 巨儒 >로 이이< 李珥 >의 학통< 學統 >을 계승, 기호학파< 畿湖學派 >의 주류를 이루었다. 예론< 禮論 >에 밝았으며 뛰어난 학식을 지녔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시호< 諡號 >는 문정< 文正 >으로 문묘< 文廟 >, 효종묘< 孝宗廟 >에 배향< 配享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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