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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진흥왕 (7)
국내여행 Travel
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280-11 중원고구려비는 국보 제205호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있다. 중원 고구려비의 발견은 신라 진흥왕이 북진을 하면서 곳곳에 순수비를 세웠듯이 국원(國原, 지금의 충주) 땅을 빼앗은 고구려도 반드시 순수비를 세웠을 터이니 국원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가금면 일원을 찾기 1년여, 1979년 2월 24일 드디어 가금면 용전리 입석(立石) 마을 입구에서 고구려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풍화로 비문이 심하게 마멸되어 분명하게 확인할 수는 없으나 장수왕 때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의 여러성을공략하고 개척한후에 세운 기념비이다. 5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판독된 비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고구려, 신라, 백제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발견 당시의 상..
송림사는 가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 동화사의 말사이며 진흥왕 5년(544)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明觀)스님이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한다. 고려 선종 9년(1092)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되었고, 고종 22년(1235) 몽고병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복구되었는데, 다시 1597년 임진왜란 때 방화로 소실, 빈터만 남게 되었다. 그 뒤 숙종 12년(1686) 기성(箕城)대사, 철종 9년(1858) 영추(永樞)스님에 의해 중창되어 오늘에 이른다.길을 따라 쌓여져 있는 돌담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절 뜰 가운데 엄청난 크기의 오층전탑이 가장 먼저 보인다. 이 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 189호이다. 959년 해체복원시 발견된 사리장엄구 등의 유물은 보물 ..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백제 고승 검단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나서 처음 머무른 곳이 이곳 선운사 경내라 하였다. 즉 진흥왕이 좌변굴(左邊窟, 진흥굴, 도솔암 밑에 있다)에서 자다가 꿈 속에서 바위가 갈라지며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것을 보고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하고 다시 이를 크게 일으켰으니 이 중애사가 선운사 내에서 첫 번째로 창건된 절이었다는 것이다. 선운사는 그 뒤 1354년(공민왕 3)에 효정이 중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조선 초기에는 다시 폐허화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성종3년(1472)에 극유 행호(克乳幸浩, 생몰년 미상)선사에 의해 10여년 동안 크게 중창된다. 10여년에 걸친 ..
고창의 진산이라고 불리는 방장산 동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고찰.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불사 창건령에 의해 밀명을 띤 고봉 반룡 두 법사가 당시 백제 땅인 고창현의 영산 방장 산하에 백제 성왕 24년(546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착공하여 준공하기 까지 2년 6개월에 걸쳐 전(錢) 오천량, 미곡 천석, 철 3천근이 쓰였다고 한다. 절의 경역도 동쪽으로 솔치, 서쪽으로 사자치, 남쪽으로 취암, 북쪽으로 용초에 이르렀으며 소유 논만 20결에 달했다고 전한다. 그 뒤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중창되었으며 현재 대웅전 칠성각 요사 종각 등이 있다. 고창의 진산인 방장산의 동남쪽 기슭에 자리한 고찰이다. [승용차] ●고창 → 상원사 (4.5km) [대중교통] ● 정읍→고창 (27km) 직행버스 10분 간..
괴산군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보개산과 칠보산 덕가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자리잡아 괴산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절의 창건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신라 진흥왕 때 유일대사가 쌍곡리 사동에 터를 닦아 절을 짓기 위해 목수들을 끌어 모았다. 목수들은 재목을 다듬으며 절을 세우기 위한 기초작업에 열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날이면 재목을 다듬고 남은 톱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기이하게 생각한 대사는 날이 새면 톱밥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연유를 알아보기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 작업장 주위를 살펴보니 어디에선가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이 날아와 톱밥을 입에 물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까마귀의 뒤를 쫓던 대사는 숲 속 깊은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 연못이 있었고 톱밥이 수없이 떠있었다. 톱밥 사..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중앙박물관 1 신라 진흥왕(眞興王) 왕의 국경순수기념비(國境巡狩記念碑)로 북한산 비봉(碑峯)에 세워진 것이다. 세운 시기는 진흥왕 16년(555년)이다. 삼국시대 금석문(金石文)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귀중한 것으로 꼽힌다. 오랜 비바람으로 비신을 보존하는 일이 어려워 안전하게 보존하려고 1972년 8월 25일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 북한산에 있는 것은 모조비이다. 비문은 조선 순조(純祖) 16년(1816년) 금석학의 대가인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선생이 북한산 비봉에 올라가 처음 판독했다. 眞興王巡狩碑興太王及衆臣等巡狩管境之時記□分甲兵之□□□年□□□□覇主設□賞□所用高祀□□□□□□相戰之時新羅太王德不□兵故□□□□□强建文大득人民□□□□□□□□□□□□□□□□□□□□如有忠信精誠□□..
지리산에 있는 많은 절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사찰로 지리산 등반객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가 이곳을 천하의 승지(勝地)로 여겨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4㎞정도 내려온,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등반객들의 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왜군에 의해 불 탔고 고려 태종5년(1405년) 정심선사가 중창했으나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다소 소실되어 방치되었다가 1981년 겨우 절다운 형태를 갖추었다. 예로부터 '법계사가 일어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면 법계사가 망한다'는 말이 있어 왜적의 침범이 잦았다는 얘기가 있다. 절 뒤에는 암봉과 신라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머물렀던 문창대가 있다.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