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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오천성 - 보령오천성 (保寧鰲川城)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오천항<鰲川港>은 백제<百濟>때부터 중국<中國>과 교역<交易>하던 회이포<回伊浦>로 알려졌고, 조선<朝鮮> 태조<太祖>5년(1396년) 서해안<西海岸> 방어<防禦>의 요충지<要衝地>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세종<世宗>13년(1421년) 도안무처치사<都安武處治使>, 세조<世祖>12년(1466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여러번 고쳐 서해<西海>를 방어<防禦>해왔다.(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보령현조<保寧縣條>) 1509년 중중<中宗>4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 부임후 축성<築城>하였고, 사방<四方>에 문<門>을 두었으며, 성내<城內>에 영보정<永保停>, 망해루<望海樓>를 두고, 바다와 도서<島嶼>까지 살피고 통신망<通信網>을 구축<構築>하였다. 거북과 같은 지형<地形>을 이용 1,650m의 장대<長大>한 석성<石城>을 쌓았고, 성내도로<城內道路>를 만들어 관<官>과 민<民>이 함께 살았고 곡성<曲城>에는 각루<角樓>와와 여담을 돌려 관망소소<觀望哨所>로 사용하였다. 지금은 시가지<市街地>와 학교<學校> 저유소<貯油所>등으로 성곽일부<城廓一部>(약400m)가 훼철<毁撤> 되었고, 홍예문(서문<西門>)과 장교청<將校廳>, 진휼청<賑恤廳>, 공해관<空海館> 3동<棟>의 관아건물<官衙建物>이 보존<保存>되고, 성곽<城郭> 약 300m 보수<補修>.정비<整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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