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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忠烈祠) -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부산지방의 호국선열들의 영령을 모신 곳

by 넥스루비 2007. 12. 13.
부산 동래구 안락동 838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부산지방의 호국선열(護國先烈)들의 영령(英靈)을 모신 곳이다.

1592년 4월13일(음력) 부산진성을 침략한 왜적이 4월15일 동래성을 에워싸고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길을 빌려달라(戰則戰矣 不戰則 假我道)"라고 하였을 때, "싸워서 죽는 것은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라고 써서 적중에 던지고 싸우다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공을 모시기 위해, 1605년 (선조38) 당시 동래부사 윤훤(尹喧)이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그 시초이다.

그후 1642년(인조2) 선위사(宣慰使) 이민구(李敏求)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임금이 사당·서원 등에이름을 지어 내리는 것)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1652년(효종3) 동래부사 윤문거가 당시의 사당이 좁고 저습하며, 성문 가까이 있어 시끄러워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는 점과 송상현공의 학행과 충절은 후학의 사표(師表)가 되므로 이를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문제삼아 안락리 현재의 충렬사 자리로 이전하면서 사당을 창건한 후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일제 36년 동안 서원에서의 교육과 함께 동래의 유림에 의해 봉행되는 제향이 민족정기를 북돋운다고 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방해를 가했기 때문에 서원과 사우 (祠宇:신주를 모시기 위해 따로 지은 집)는 보수를 하지 못하고 낡아 허물어져 갔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정화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규모로 정화한 후 임진왜란때 순절한 동래 부사 충렬공 송상현공, 부산첨사 정발장군 등 부산지방에서 순절한 민, 관, 군 등 모든 선열의 위패를 직책 또는 증직 (曾職)의 순서에 따라 91위의 신위를 모셨다.

현재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는 (재)충렬사 안락서원에서 홀기에 의해 제향이 올려지며, 매년 5월 25일에는 부산시민 모두의 정성을 모아 부산시에서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충렬사 제향은 400년간을 유림에서 연면히 이어오고 있으며 한국 고유의 전통 제례법에 의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충렬사 내에는 본전과 의열각, 기념관, 소줄당, 군관청, 정화기념비, 송상현공 명언비, 임란 동래24공신 공적비, 충렬탑등 볼 유적들이 많이 있다.

입장시간 : 09:00~17:30, 퇴장시간 18:00
동절기(11/1~2월말) : 09:00~17:00
하절기(3/1~10월말) : 09:00~18:00


[대중교통]
●지하철
교대역, 연산동역에서 하차후 시내버스(15분)를 이용하여 안락로타리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5분 소요.

●시내버스 : 31, 307, 47, 100, 52-1, 100-1, 31-1, 247, 378, 183, 188, 89,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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