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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국내여행지/암자 (52)
국내여행 Travel
양산 통도사의 부속암자. 고려말에 지어진 것으로 3천개의 금불상이 안치돼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염색방법인 '쪽염색'을 되살린 곳으로 더 유명하다. 성파(性坡)스님은 20여년 동안 쪽염색을 연구, 지금은 20여 식물을 이용하여 염색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성파스님이 밝혀낸 우리의 전통 염색방법은 '전통염색문화강좌'를 통해 전수되고 있다.
충남 서산의 간월도에 있는 작은 암자이다. 간조 때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 때 섬이 되는 암자이다. 절 마당에서 천수만의 넓고푸른 바다가 한 눈에 조망된다. 조선 왕조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무학대사가 창건했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토굴을 지어 득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무학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퇴락했다가 절 터에 만공대사가 절을 중건(1914년)하여 말년을 보냈다. 간월도 - 간월암 너머 지는 해 '일품'
금산의 비경과 어우러진 이 암자는 우리나라 3대 기도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 금산의 주봉우리인 대장봉에 관음이 머물러 있다고 믿어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수도할때 이곳에 초당을 짓고 보광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기에서 100일 기도한 후 새 왕조를 창시하였다고 하여 조선 현종 원년(1660년)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절의 3층석탑은 신라 김수로왕의 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이란 돌로 세웠다고 전해진다. 신기하게도 이 탑 앞에서는 나침반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3층석탑 앞은 금산의 제1전망대이다. 산 밑으로 상주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려수도의 비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수청산(772m) 중턱에 있는 암자. 지금은 법당과 칠성각, 산신각 등으로 구성된 작은 암자이나 암자 아래에 있는 옛 절터는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음을 짐작케한다. 본절인 실상사의 창건과 비슷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실상사 승려들이 여기로 피난을 와서 화를 면했다고 한다. 삼층석탑과 석등, 석종형 부도 3기가 있다. 삼층석탑은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장엄한 느낌을 준다. 가까이 있는 단아한 석등이 삼층석탑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백장암 - 실상사의 부속 암자백장암 삼층석탑 - 탑신 전체가 천인, 보살, 천왕상등으로 가득 찬 화려한 석탑백장암 석등 - 각부의 비례가 아름다운 우수한 석등실상사 -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가 세운 절로 9산선종 중 가장 먼저 생..
천성산 남쪽 중턱의 암벽 위에 자리잡고 있는 수도도량.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원효대사의 법풍(法風)을 유지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명명했다고 한다. 천성산 역시 원효대사가 천명의 대중을 가르치고 자신도 수도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원효암에는 현재 법당, 북극전, 산영각, 의상대, 종각 등이 있다. [승용차]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 - 양산 I.C - 언양·통도사 방면 국도 - 대우 마리나아파트 신호등에서 좌회전 - 양산 세관 -약 300m 더 직진 - 대성마을 -홍룡사 안내간판 여기서 왼쪽 길을 택하여 약 1.5km 오면 홍룡사가 나오며, 홍룡폭포는 홍룡사 가까이에 있다. [대중교통] ●부산에서 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이나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1..
여수 앞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솟은 금오산(323m)은 그 형상이 마치 거대한 거북이가 경전(經典)을 등에 지고 바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한다. 향일암은 이 금오산이 바다와 맞닿아 언덕을 이룬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의 낙산사, 서해의 강화보문사, 남해금산의 보리암 등에 버금가는 관음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에 원효대사가 원통암(園通庵)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었으며 그후 윤필대사가 고려 광종 9년(958)에 수도하면서 산의 형세를 본따 금오암이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조선시대 승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으며 조선 숙종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뒤 향일함(向日庵)으로 개칭했다고 한다.이는 동해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광경의 장엄함을 기리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호악산 용문사의 부속암자. 조선 영조 27년(1751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보광전, 요사채가 있다. 일제시대 3.1 운동때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이였던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설석우 스님, 성철 스님등 고승들이 거쳐간 곳이라고 한다.
강원도 속초시 신라 진덕여왕 6년(서기 652년) 자장율사가 건립하였는데 본래 이 굴은 자장, 동산, 봉정 세 조사가 수도하였으며 그 후 원효대사, 의상조사에게 계승하였다하여 계조암이라 부르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바위 중에서 제일 둥글게 보이는 목탁바위 밑 굴속에 암자가 있으며 "계조암극락전"이라고 음각되어 있다.[승용차] ● 경부고속도로→신갈IC→영동고속도로→강릉IC→동해고속도로→현남IC→7번 국도→설악산 ● 강일IC→동서울톨게이트→중부고속도로→호법IC→영동고속도로→강릉IC→동해고속도로→현남IC→7번 국도→설악산 ● 대전→경부고속도로→회덕IC→중부고속도로→호법IC→영동고속도로→강릉IC→동해고속도로→현남IC→7번 국도→설악산 ● 호남고속도로→회덕IC→중부고속도로→호법IC→영동고속도로→강릉IC→동해고..
경기도 동두천시 신라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기거했다는 설로 수많은 승려들이 수도를 위해 찾는 곳이다. 보물 제1211호인 '반야바라밀다심경' 언해본이 있다. 암자의 서책 정리과정에서 지난 1994년 발견됐으며 낙장 없는 완벽한 언해본이다. [승용차] ●3번 국도 ⇒ 역동에서 자재암쪽으로 우회전(소요산 입구에서 자재암 일주문까지 걸어서 30분 소요). [대중교통] ●의정부역에서 매시 20분 열차 운행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소요산까지 직행버스 하루 12회 운행.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대천공원을 거쳐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산림욕장이 나오고 폭포사에 이르기 직전에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장산폭포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암자 앞을 지나 흘러 조용한 곳이다. [대중교통] ●시내버스 * 동부터미널에서 100-1번 시내버스 이용 * 영도, 부산진시장 혹은 대연동에서 109번 시내버스 이용 * 서면에서 태화백화점 혹은 부전시장에서 5번 시내버스 이용 * 부산역에서 40번 시내버스 이용 * 반송에서 115-1번 시내버스 이용 해운대 신시가지 대림아파트 정류소에서 하차, 폭포사방향 표지판을 따라 가다보면 공원같이 느껴지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대천공원'이다.
병풍암 석불사는 부산 만덕 고개에 있는 절이다. 국내 최대의 마애불군이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이 일대는 큰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모양을 하고 있어 병풍바위라고 부른다. 이들 거대한 바위에는 마애불상(磨崖佛像)이 새겨져 위용을 자랑한다. 이 거대한 바위들에는 16 나한(羅漢)과 29개 불상(佛像)이 새겨져 있다. 석불의 가운데 돌계단을 오르다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오른쪽 바위 틈으로 들어가면 신만덕 일대와 주변 경관이 한 눈에 들어 조망된다. [승용차] ●제1만덕터널 ⇒ 병풍암(절 안내 표지판 옆 주차장에 주차 가능) [대중교통] ●석불사 봉고 이용(9시, 9시 50분 출발. 단, 음력 초3일은 만덕1터널 위에서 운행) ●시내버스 48, 111, 200번 이용
금정산에 있는 암자이다. 범어사 입구에서 왼쪽 골짜기를 따라 500m 가량 올라가면 된다. 1899년 수옹혜윤 성월일전 등 네 사람의 화상(和尙)과 휴진 등 세 사람의 수좌들이 처음 금강암에 임시 선회를 세워 임시 선사를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금강암 법당은 주변의 건물보다 3m 가량 높은 석단 위에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과 생동감 넘치는 용 조각의 현판 옆기둥 들보, 섬세하고 정교한 목조 보개(寶蓋) 및 불단의 조각이 돋보인다. 늦가을 단풍 든 이 곳 풍치를 금강만풍(金剛晩楓)이라 칭하는데 범어사 8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장관이다.
조선 효종 9년(1658년) 도오(道悟) 스님이 창건했다. 정조 14년(1790년) 중수했으며 1960년 개축했다. 부도가 있는 곳에 절을 지었다 하여 부도암이라 한다. 비구니들의 수행 도량이다.
망운산 정상 부근에 있는 망운암은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화방사의 부속암자로 화방사를 건립할 때 같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개의 명승지들이 관광지로 탈바꿈되어 세속화 되고 있지만 아직은 동자승 눈빛처럼 깔끔한 곳이다. 망운암은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면 병이 씻은 듯이 낫는다는 영험을 안고 있는 기도도량으로 보물급에 해당하는 보살을 형상화한 석불이 있는데 수백년의 인고의 세월을 이겨냈다고 전한다. 승용차로 가려면 서면 노구마을에서 진입하는 것이 좋다. 35분쯤 오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지점이 남해 최고봉인 망운산 정상. 사방을 둘러봐도 무심히 흐르는 구름, 점만한 섬들 사이로 한가로이 오가는 배들뿐 거치는 것이 없다. 풍광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세속의 잔티를 가시며..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감독 배용균)의 촬영지이다. 이 영화는 뛰어난 영상미로 찬사를 받았는데 그 영상 속에 등장하는 현장이 바로 이 곳이다. 영화 속에서 동자승이 큰 스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소담스런 마당과 그것을 둘러싼 고요하고 아름다운 암자가 바로 영산암이다. 지조암과 함께 봉정사의 부속 암자이자 스님들의 참선도장이다. 그러나 봉정사를 찾아온 사람들조차 이 영산암을 보지못하고 돌아갈 정도로 영산암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암자였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봉정사와 떨어져 있는데 개울 건너 작은 계단을 올라가면 적막한 숲 속에 자리잡은 영산암을 만날 수 있다. 영산암은 출입문인 우화루 누각과 응진전(應眞殿), 3동(棟)의 요사와 응진전의 좌측에 있는 산신각(山神閣) 등이 ㅁ자형으로..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1∼8리 보덕사에 딸린 암자이다. 유배 중이던 단종이 궁에 있을 때 꿈에 보았던 장소와 비슷하다 해서 금몽암(禁夢庵)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1745년 장릉 참봉 나삼이 그 터에 절을 지었으며 1792년 한명, 재엽 등이 지금의 모습인 일반 건물 형태로 중수했다. 16칸 기와집이며 해강 김규진이 쓴 '금봉암'과 '우화루' 현판이 걸려있다. 부도와 부도탑이 각 1기씩 있다. 목판에 새겨진 '금몽암 중수기'에 이 암자의 내력이 적혀 있다.
삼봉산(1,254m) 기슭에 있는 암자이다. 삼봉산은 금강산의 한 봉우리를 옮겨놓은 것같은 산세를 지녀 소금강이라 부른다. 금봉암은 삼국시대 때부터 절이 있었던 터에 지난 1905년 세워진 절이다. 영험있는 기도처로 알려진 암자이다. 석불바위 뒤 샘물은 피부병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칼바위 위 바위굴 샘은 기도샘, 용굴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암자 주위에는 여러 형상의 바위들이 있는데 금봉암 뒤 석불바위는 장삼을 입고 고깔 쓴 스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장군바위, 칼바위, 투구봉, 용바위, 노적봉, 칠성봉, 신선봉, 부부봉 등도 있다.
830년대 신라 흥덕왕대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속칭 '돌구멍 절'이라고도 한다. 그 유래는 현재 암자의 식수로 사용되고 있는 법당과 산신각 사이의 샘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이 샘은 본래 이 절에서 수도하는 스님을 위하여 언제나 그 날 식구수 만큼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스님이 이 구멍을 막대기로 쑤셔서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때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 한다.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김유신 장군이 17세 때 이 암자 뒤에 있는 석굴에서 심신을 단련했다는 전설도 전한다. 김 장군은 이 곳에서 피갈선인(被褐仙人)으로부터 신검을 얻고 비방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신라 경문왕 때 혜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운부암과 함께 은해사의 수도원의 역할을 해왔다. 20여명의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암자이다. 본당인 극락전, 지장보살과 염라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한 명부전이 있다. 보화루, 극락전, 심검당, 진영각 등이 입구(口)자 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선생의 친필 액자가 있다. 이 액자에는 산해숭심(山海崇深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는 뜻. 즉 고매한 인격과 넓은 도량을 갖추어야 한다)이라는 글귀가 씌여있다.
588년 운달조사가 창건, 참선수행을 한 암자이다. 조선시대 부용영관이 머물렀다. 1714년 혜총이 중창했다고 한다. 1752년에 다시 중창하고 무영이 머물렀다. 전국 각지의 큰 스님들이 찾아와 머문 수행자들의 참선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이다. 1800년에 영월이 시영과 함께 김룡사의 청하당을 이 곳으로 옮겨 창건했다. 1806년 혜월이 중수했다. 이 때 법당을 단청하고 불상과 탱화를 조성했다. 1886년 혜월 제자인 혼성이 용호와 함께 중창했다.
1658년 설잠(雪岑)이 창건했다.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이다. 산 중턱에 우거진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경관이 아름답다.
창건 유래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으나 1758년 백련(白蓮)이 중건했다고 한다. 이 때 암자 이름을 중암에서 화장암으로 개칭했다고 전해진다. 1768년 영파성규가 영각을 건립했다. 1799년 양학이, 1867년 수은이, 1900년 영안이 각각 영각을 중수했다. 인법당과 요사채 등이 있다.
금학산의 북쪽에 있는 금정암은 용담사의 부속 암자. 의상대사가 수행했다는 의상바위가 근처에 있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정암 중수기에는 1710년 혜심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전한다. 모든 전각들이 북향이다. 화엄강당은 정면 8칸, 측면 3칸 규모다. 화엄강당 오른쪽에 요사인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전등전이 있다. 화엄강당 뒤쪽에는 산령각, 산령각 오른쪽에 우상당이 있다. 전등전 앞에 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지난 1998년 1월 엄동설한에 하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려 화제가 되기도 한 배나무이다.
노악산에 있는 남장사의 속암이다. 법당 본존불은 토제 아미타불좌상이다. 그 좌우에 관세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있다. 조선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산신각 안에는 영조 28년 남장사 관음전 불전으로 만들어진 남장사 관음전 불정과 1935년 중궁암 칠성전 불정으로 조성된 두 폭의 정화가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전형적인 법종인 동종이 있다. 암자의 주변 경관이 빼어나며 한 눈에 상주시가 조망된다. [대중교통] ●상주시내 ⇒ 남장사행 시내버스 이용
남장사에 속한 암자이다. 관음전 안에 흙으로 만든 불단 위에 주존불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이 보살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양 옆으로 흘러 내린 검은 머리털이 어깨 위에서 네 가닥씩 퍼졌다. 조선시대 작품이다. 이 보살좌상 뒤에 있는 목각 불정은 지방문화재 58호로 지정된 것이다. 주존불 왼쪽에는 연못에서 솟아오른 연화대좌 위에 관세음보살좌상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이 있다. 이 불정이 본사 보광전의 목정에 비해 더 우수한 작품으로 꼽힌다. 삼존의 목정은 1694년에 조성된 것으로 기록돼 현존 국내 최고의 목조 정화이다. [대중교통] ●상주 ⇒ 남장사행 시내버스 이용
고남산에 있다. 1933년 선덕화고음 김보덕화 보살이 건립한 암자이다. 부녀자들이 기도 드리는 기도도량으로 유명하였다 한다. 대웅전(3칸), 칠성각(2칸), 5층 석탑 등이 있다.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산4 구례읍에서 2km 정도 남쪽인 문척면 죽마리 오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암자. 암자 뒷편으로 절벽이 치솟아 있는데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으로 각각 불리고 있다. 옛 문헌에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소금강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성암사적'에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이 주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어 아마도 이들이 이 곳에 수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암자 동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 되는 마애입상이 음각돼 있다.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례읍에서 2km 정도 남쪽인 문척면 죽마리 오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암자. 암자 뒷편으로 절벽이 치솟아 있는데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으로 각각 불리고 있다. 옛 문헌에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소금강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성암사적'에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이 주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어 아마도 이들이 이 곳에 수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암자 동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 되는 마애입상이 음각돼 있다.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남 담양군 용면 월계리 산81-1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를 일으킨 보조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정유재란으로 불탄 후 선조 40년(1607) 승려 신찬이 중수하였다. 그후 효종 1년(1650) 다시 스님들이 힘을 모아 다시 지었다. 보조국사가 수선사에서 정혜결사를 하기 전에 지리산의 상무주암에 주석했던 사실로 보아 이곳 추월산의 경관을 보고 아담한 암자를 짓고 잠시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보리암은 백양사의 말사로 1983년 주지 성묵스님에 의해 현법당을 복원하였다. 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부연을 단 겹처마집이다. 중앙은 전퇴를 두고 마루를 깔았으며, 양협간은 중방을 높여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둥은 원형이며 그 위에는 창방과 장혀 도리로 연결되고 있다. 공포는 기둥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