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 - 대규모 가마터가 있는 서리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용인시 이동면 서리 산23-1외

서리< 西里 >의 중덕부락< 中德部落 > 산< 山 >23번지에 위치하여 퇴적구< 堆積丘 >는 자연경사의 ' '형< 形 >으로 가운데가 움푹하고 양옆이 봉우리를 이루며 퇴적더미의 길이는 80m, 폭은 50m, 높이는 5∼6m에 달하는 대규모 가마터이다. 퇴적층에서 가마의 유구와 백자< 白瓷 >, 청자< 靑瓷 >, 도기편< 陶器片 >, 갑발< 匣鉢 >, 갑발< 匣鉢 >받침, 가마벽편< 片 >들과 작업과 관계있는 건물지가 조사되었다. 가마는 퇴적구< 堆積丘 >의 양쪽 사이에서 발견< 發見 >되었는데, 최하층의 벽돌가마는 약 40m의 길이, 폭 1.8m으로 7×15×32cm에 달하는 장방형< 長方形 >의 벽돌을 사용하였고, 그 위의 진흙가마는 길이 83m, 폭 1.2m로 진흙과 갑발< 匣鉢 >을 사용해 가마를 축조하였다. 출토도자< 出土陶瓷 >는 백자< 白瓷 >의 완< 완 >, 접시, 발< 鉢 >, 항< 缸 >, 대합< 大盒 >, 광구병< 廣口甁 >, 탁잔< 托盞 >, 호< 壺 >, 장고, 제기 등으로 그중 햇무리굽 완, 접시가 대부분이며, 철화백자장고편< 鐵畵白瓷장고片 >, 그리고 청자< 靑瓷 >접시, 완편< 완片 >, 질그릇항아리편< 片 >들이 발견되었다. 백자< 白瓷 >의 태토< 胎土 >는 백색< 白色 >의 고운 것과 입자가 거친 것이 있으며, 담청< 淡靑 >을 머금은 백자유< 白瓷釉 >에 내화토< 耐火土 >받침으로 받쳐 구워졌다. 가마의 제작시기는 햇무리굽완< 완 >의 중심시기를 11세기< 世紀 >로 볼 때, 선햇무리굽완< 완 >의 시기인 10세기후반< 10世紀後半 >부터 11세기< 世紀 >를 거쳐 후햇무리굽완의 시기인 12세기전반< 12世紀前半 >까지 계속되었다고 추정된다. 1984년, 87년, 88년까지 3차에 걸쳐 호암미술관< 湖巖美術館 >에 의해 발굴조사된 이 가마터는 고려시대< 高麗時代 > 초기< 初期 > 백자요지< 白瓷窯址 >로서의 중요성과, 6m에 달하는 잘 남아 있는 퇴적층< 堆積層 >과 벽돌가마, 진흙가마의 존재, 다양< 多樣 >한 기형< 器形 >의 백자편< 白瓷片 > 등으로 고려백자< 高麗白瓷 >의 기원< 起源 >과 발전< 發展 >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가마터이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