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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 자연속의 인공정원. 선비의 정원 소쇄원. 밝은 빛과 대숲의 바람, 은은히 비치는 달은 한국 정원의 백미

by 넥스루비 2017. 2. 8.

소쇄원은 양산보(1503 ~ 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1482 ~ 1519)가 기유사화로 능주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이다. 별서란 살고 있는 살림집 외에 경치좋은 터를 골라 따로 마련한 일종의 별장으로 보통의 경우 자신의 시골집 인근에 원림을 조성하고 정자건물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는 하나의 후원이다.  흔히들 소쇄원이라고 부르는 곳은 엄격히 말하면 소쇄원의 내원(內院)에 해당하는 곳이다

.

소쇄원의 '소쇄'는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양산보는 이러한 명칭을 붙인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소쇄옹'이라 하였다.

소쇄원은 원림 북쪽 끝의 '오곡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뒷산 계곡을 따라 용정봉으로 올라가면서 차반(茶田), 복숭아밭, 숯가마터, 다리, 고암동굴에 이르기까지 경영되었으니 이른바 소쇄원의 외원(外院)으로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연속의 외원과 인공미가 가미된 외원으로 이루어진 원림은 성리학자들의 이상이었던 무이구곡(武夷九曲)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주자(朱子)가 경영하였던 무이구곡은 인공과 자연이 적절히 배합되어 하나 하나의 곡을 이루었고 이것들은 조선 유학자들의 원림구성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소쇄원의 배치구조

전정(前庭)

왕대나무숲과 진입부.
어두운 숲을 지나면 갑자기 밝고 넓어진 정원에 감동한다.

원정(垣庭)

담장으로 구획된 대봉대(待鳳臺), 애양단(愛陽壇)이 있는 장소.
긴 담장을 따라 좁은 진입로가 유도되며 왼쪽으로는 두 개의 인공 연못을 감상한다. 그러다가 밝고 넓은 애양단에 이른다.

오정(塢庭)

개울 건너 조성된 꽃계단과 긴 담장.
꽃계단 담에는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명문이 붙어 있다.

계정(溪庭)

광풍곽 일대와 계곡.
이곳은 소쇄원의 중심공간이다. 개울의 물소리를 들으며 휴식과 독서, 바둑두기, 술미시기, 노래하기, 거문고타기, 낮잠자기 등 온갖 휴양과 유희의 해위가 벌어진다.

후정(後庭)

제월당 일대와 뒷산.
제월당은 주인의 독서실이면서 소쇄원 전경을 감상하는 곳이다.

내정(內庭)

고암정사와 부훤당 일대.
지금은 가장 황량한 장소로 방치되고 있다.
고암정사와 부훤당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980년대 초까지는 이 자리에 후손들의 살림채가 2동 있었다. 85년 정비계획에 따라 어슬픈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내정에 있던 살림채들은 철거하여 물건너 현재의 살림집으로 이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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