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국내여행 Travel

다산초당 - 다산 정약용 선생이 10여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곳 본문

문화ㆍ행사/문화재

다산초당 - 다산 정약용 선생이 10여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곳

여행정보 넥스루비 2016. 9. 22. 19:56

강진만이 한 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萬德山, 408m)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선생이 강진 유배 18년중 1808년 봄부터 1817년까지 10여년간 거처하면서 연구한 다산학 산실이 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불후의 명서(名書)들과 함께 후학을 가르치며 스승으로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학이 머물던 곳이다. 이곳에서 24년이나 연하인 추사와 초의와도 교유(交遊)를 맺어 마주 앉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강론을 벌였다 한다.


시원스런 대나무 숲을 뚫고 오솔길을 오르면 정면 3칸, 측면 1칸인 팔작기와를 인 다산초당이 시야에 들어오고, 왼쪽엔 서암(西庵) '다성각(茶星閣)'이, 오른쪽엔 '보정산방(寶丁山房)'과 '다산동암(茶山東庵)'이 1974년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맞배지붕으로 복원되어 있다. 원래 초당(草堂)은 말 그대로 띠집이었던 것을 1958년 다산유적보존회가 복원하면서 지금과 같이 규모를 넓혀 놓은 것이다.


초당 뒤 언덕 바위에 '정석(丁石)'이란 다산이 새긴 글이 보이고, 초당 오른쪽엔 계곡물을 낙차시켜 연못을 만들어 운치를 더한다. 동암으로부터 떨어져 남해를 바라보고 천일각(天一閣)이 서 있는데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간 둘째형 약전이 생각날 때마다 올라 심회를 달래던 누각이다.
천일각 옆길따라 초당 뒤를 돌아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운치가 있고 만덕산 중턱에 올라 강진 구강포를 내려다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다산초당은 1936년 허물어진 것을 1958년 5칸도리 단층기와집으로 중건한 후 선생께서 우거(寓居)하셨던 것을 동암(松風菴)과 제자들의 유숙처인 서암(茶星閣)을 복원하였다.


※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아들로 태어나 28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 병조참지(兵曹參知), 형조참의(刑曹參議) 등을 역임했다. 1801년 신유교옥(辛酉敎獄)으로 장기로 유배되었으나 황사영백서 사건으로 강진에 이배(移配)되어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에서 4년동안 지낸 후 보은산방(寶恩山房)과 이학래사(李鶴來家)로 옮겨 지내셨으며, 외척인 해남 윤씨의 도움으로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 18제자와 더불어 저술과 강학을 하였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