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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 - 고산 윤선도가 머물던 해남 윤씨 종가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

해남 윤씨 종가댁. 윤선도의 4대 조부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 1476~1543)이 이 곳 연동에 살터를 정하면서 지은 건물이다.
엄격히 말하면 녹우당은 이 종가댁의 사랑채를 말한다. 사랑채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현종 9년(1668년) 바닷길을 통해 이 곳에 옮겨 놓은 것이다.
녹우당(綠雨堂)은 덕음산을 뒤로 하고 벼루봉을 마주보며, 오른편으로 필봉을 두고 있는 명당이다. 녹우당이라는 당호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뒷산의 비자나무 숲이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가 우수수 봄비 내리는듯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국문학의 비조(鼻祖)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543)는 이 곳과 해남 금쇄동, 완도 보길도 등에 머물면서 불후의 시조문학을 낳았다. 또한 이 곳은 고산의 증손이며 선비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자취가 배어 있다.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로 구성되어 있다.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역에는 가묘인 어초은사당과 고산사당이 있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담모퉁이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침방, 사랑방, 대청이 一자로 늘어서 있다. 사랑채의 침방 뒤쪽의 곳간이 안채의 부엌간과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 뒤 동쪽으로 난 중문으로 향하면 안마당이 있고, 안채는 ㄷ자형으로 들어 서 있다. 현재 녹우당에는 윤선도의 14대손인 윤형식씨가 살고 있다.

녹우당의 분위기는 그 이름처럼 온통 푸르다. 세상을 내던진 고산의 의절이 그렇고 녹우당을 둘러싼 대나무와 비자나무의 물결과 녹우당 뒤켠의 차밭도 푸르다. 산중신곡과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우리 가사문학의 최절정인 고산의 문학세계도 아직 그 생생한 푸른 숨결을 방문객에게 느끼게 해준다.
녹우당의 돌담과 고샅길은 운치가 그만이다. 녹우당의 현판글씨도 예사롭지 않다.

녹우당 앞에는 5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다.오른편으로는 고산유물전시관, 왼편으로는 고산유적관리사무소. 유물전시관에는 국보급 보물들이 수두룩하다. 국보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미인도,윤선도가 직접 쓴 '금쇄동집고' '산중신곡' 등 가첩, 우리나라에 단 하나 남은 고려 때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등 보물이 많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자료도 얻을 수 있고 직원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승용차]
해남버스터미널 앞 ⇒ (진도방면) 13번 국도 ⇒ 827번 지방도로(대흥사 방면) 2km ⇒ 연동마을 (600m)


[대중교통]
해남 ⇒ 연동마을 (06:00-19:30, 30분간격, 2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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