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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영정병함 - 우리나라 회화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는 초상화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용인시 모현면 일산리 276

유수(柳綏)의 초상은 전신교의(全身交椅)의 좌안칠분상(左顔七分像)으로,「四九歲丙午年在東萊 西生鎭僉使秦再奚摸眞」라는 명문(銘文)에서 시사하듯이 그가 49세 되던 해인 병오년(丙午年;1726) 동래(東來)에서 첨사(僉使) 진재해(秦再奚)가 그린 것이다. 이 초상은 전신안배와 취세(取勢)에 있어서 유연성이 뛰어나다. 오사모(烏紗帽)의 형태는 상당히 높아지고, 사모각(紗帽角)의 구갑철선묘 역시 세필로 묘사되어 있으며, 흑포(袍依) 단령 위로 나타나는 학(鶴) 흉배의 문양, 공수(拱手)의 취세 등에서는 정형화된 조선조 초상의 화양(畵樣)을 존중했으면서도 여타 공신상(功臣像)보다는 분방하게 그려져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전신포치(全身布置)의 완곡한 선처리등에서 화격(畵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편, 유수의 초상 좌측에는 자신의 육필로 된 시문이 적혀 있고, 말미에「六十二歲己未正月初七日自書」라 기록하고 낙관을 찍었다. 바로 진갑날에 49세때 그려진 자신의 초상 위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유수의 초상은 작자와 연대가 명확하여 우리나라 회화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된다. 특히 진재해는 조선조의 유명한 화사(畵師)로써 숙종의 어용(御容)과 김창집(金昌集) 등의 초상을 그렸다. 유수(柳綬)는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이다. 호는성곡(聖谷), 자는 여회(汝懷)이다. 숙종 4년(1678) 정월에 출생하고, 경종(景宗) 원년(1721) 문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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