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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 퇴계 이황이 서당을 짓고 유생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

by 넥스루비 2016. 12. 11.

도산서원은 한국 유학사의 큰 별이며 해동주자(海東朱子)라 불리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 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예부터 선비들이 한번쯤 찾아 보기를 소원하던 곳이며, 지금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 선조(宣祖) 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들이 상덕사(尙德祠)(보물 제211호)란 사묘(祠廟)를 지어 그를 향사(享祀)하였고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선조 8년 사액(賜額)을 받음으로써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안동지방에는 유달리 서원이 많다. 하회 류씨에 의해 서애 유성룡 선생과 아들 류진을 모시는 병산서원,의성 김씨의 사빈 서원, 안동 권씨의 도계서원, 배향문제로 시비가 일었던 호계서원, 고산서원,묵계서원,고산서원, 조계서원 등이 오늘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들 서원 가운데에서도 도산서원은 사림의 온실로서, 영남학파의 산실로서 손꼽히는 곳이다.

퇴계 이황(1501∼1570)은 대사성(大司成), 단양(丹陽)·풍기(豊基)군수, 공조·예조판서, 우찬성(右贊成) 등을 거쳐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냈으며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이다. 동국유학(東國儒學)의 도통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사액,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진력하였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그의 시문과 더불어 동방도학(東方道學)의 정수이자 중종·명종·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서원은 정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도산서당이 있고 좌측에는 농운정사(瀧雲精舍)가 있으며, 그 뒤로 올라가 진도문(進道門)을 지나면 전적(典籍)을 소장한 동·서의 광명실(光明室)이 있고, 그 뒤로 서원의 주 건물로 전교당과 동·서재가 있다. 또한 전교당 뒤로는 퇴계의 신위를 모신 상덕사가 있고 주변에는 [도산12곡]의 판목이 소장된 장판각(藏板閣)이 있으며 이 외에 고사(庫舍), 주방, 유물전시관(玉振閣)이 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당시 민간 사가(士家)의 사저(私邸)양식을 따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의 자세를 잘 반영했다. 도산서원은 높지 않은 산자락에 사당, 재실, 강당 등이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운치가 있으며, 절승지인 이곳에서 퇴계선생은 후학들과 10여년을 생활했다.

퇴계종택 - 퇴계 이황 선생의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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