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련사 사적비 - 백련사 사적비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246

이 비는 백련사 대웅전의 우측으로 약 50m 떨어진 빈터에 자리잡고 있다. 외형을 보면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었는데 이수는 용이 반결하는 방형의 옥개석이다. 자경 15cm의 전서로 「만덕산백련사비」라 쓰고 측면에는「 전라도강진 만덕산백련사사적비」라는 제목을 명문하였다. 비문은 행서체인데 통훈대부전행홍문관부찬지제교겸경연검토 관춘추관기사관조종자가 찬하고 글씨를 쓴 분은 현록대부랑 선군겸오위도총관 우이다. 또 전액은 가덕대부랑원군겸오위 도총부도총관 간이 썼다. 사적비 세부기법을 보면 귀부와 좌대를 일석으로 하였는데, 귀두는 용두화 되었으나 고려시대 초기의 귀부에서 볼 수 있는 경이와 긴장감이 도는 사실성에는 미치지 못하고 또한 여 의주를 물지 않고 있다. 육갑문은 귀부의 앞부분과 뒤에서만 나타나고 비좌를 에워싼 주변에는 인동문을 음각하였다. 그 위에 방형의 비좌와 비신, 그리고 옥개석을 올렸는데 귀부높이는 110cm이며 귀신높이는 233cm, 비폭은 118cm이다. 비신은 측면 두께가 29cm로 양측 모두 화문과 당초문으로 장식을 하였다. 옥개석은 4각방형인데 상면에 용이 반결하여 옹두는 서로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하면으로는 염고을 각출하였다. 비의 건립연대는「숭정기원무진후오십사년 신유 오월일립」이란 말미의 명문으로보아 조선 숙종 7년(1681)임 을 알 수 있다. 이 사적비는 그 건립연대가 비록 조선시대이긴 하나 귀부를 안치하고 이수에서 반결하는 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등, 전통기법을 잘 고수하고있다. 특히 귀부 앞발의 5과와 뒷꼬리를 귀갑 위로 올려붙여 쳐들고 있는 모습은 이 귀부의 전 제적인 생동감을 잃지 않게 하고 있다. 백련사는 고려시대(1216)에 원묘국사가 구기에 대대적인 중창을 하고 송광사의 정혜결사와 함께 백련결사를 일으켰던 사찰이며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팔대국사와 팔대사를 배출하였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