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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동지석묘 - 2기의 고인돌(支石墓)은 청동기시대의 분묘인 돌무덤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통영시 봉평동 67-2

봉평동 67번지 해안(지금은 바다매립으로 해안선이 훨씬 멀어졌다)에 남아 있는 이 2기의 고인돌(支石墓)은 청동기시대의 분묘인 돌무덤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축조형식에 따라 탁자식(卓子式), 기반식(基盤式, 바둑판식), 개석식(蓋石式)의 3가지 형식으로 나누어진다.

탁자식은 북방식(北方式)이라고도 하는데 4개의 판돌(板石)을 세워 평면이장방형인 돌방(石室)을 만들어 그 속에 주검을 넣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올려놓은 것으로 돌방이 지상에 드러나 있다.

기반식은 남방식(南方式)이라고도 하는데 판돌, 깬돌(割石), 냇돌(川石) 따위로 지하에 돌방을 만들어 주검을 넣은 다음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을 말한다.

개석식은 기반식과 비슷한 형식인데 기반식이 받침돌(支石)이 있는것에 반하여 개석식은 받침돌이 없다.
또 탁자식은 한강 이북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기반식은 한강 이남지역에, 그리고 개석식은 한국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봉평동지석묘는 아직 내부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구조나 껴묻거리(副葬品) 등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외형상으로 보아 받침돌 위에 넓적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이 전라남도와 경상남북도 해안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반식이다.

옛날에는 수십기의 지석묘가 미륵도 해안선을 따라 분포되어 있었다 하나 지금은 개발에 밀려 주거지와 경작지로 바뀌면서 흔적이 없어졌다.
그러나 미수1동 해안에 지석묘의 덮개돌로 보이는 100여기의 큰돌이 흩어져 있어 이에 대한 학술조사가 이루어지면 선사시대 통영의 인류사를 보다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지석묘는 일본 구주지방의 지석묘와 닮은 점이 많아 이를 통하여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묘제연구는 물론 일본과의 교류관계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이 지석묘는 2기가 다 덮개돌이 타원형에 가까운데 큰 것은 길이 270cm, 너비230cm, 두께 70cm이고 작은 것은 길이 265cm, 너비 215cm, 두께 60c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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