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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 - 보물제474호로 지정된 벽송사 3층석탑이 있는 수도 도량으로서 전통사찰

by 넥스루비 2007. 8. 7.

대한불교 조계종 12교구 본산인 해인사의 말사.벽송사는 조선 중종 경진년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며, 보물제474호로 지정된 벽송사 3층석탑이 있는 수도 도량으로서 전통사찰 제 12호로 지정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우리나라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초입의 산 충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6.25 전란을 전후하여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벽계정심에 법맥을 이어 조선 태고종의 5대 정통이 되었고 부용영관, 원오, 일선 등 60여명에게 선(禪)을 가르쳤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여러번의 화재로 인하여 사적기(事蹟記)가 없어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없다. 다만 현 절위에서 50m 위의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이 조선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 절의 창건 역시 신라말 내지 고려초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1520년(중종15)에는 벽송(碧松)선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으며 6ㆍ25때 보광전(普光殿)과 방장선원(方丈禪院)을 제외한 사우 모두가 불타버린 것을 곧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강원도 설치하고 있다.

창건설화로, 조선조에 불어닥친 불교탄압으로 선승들이 수난을 당할 때 조계종 제4조(祖)인 벽계 정심선사(碧溪 淨心禪師)는 화를 피해 이 골짜기 광점동(筐店洞)에 은거하여 변복에 머리 기르고 공양보살을 부인으로 위장하여 싸리를 꺾어 삼태기를 만들어 팔면서 때를 기다린다. 어느날 찾아온 젊은이가 크게 깨우쳐 법맥을 이으니 이가 곧 벽송(碧松) 지엄선사(智儼禪師)이다.

벽송사의 법맥은 벽계-벽송-부용으로 이어진다.

해방후 토지개혁전까지만 해도 농지수입이 많아 강원생 가운데 뛰어난 스님을 유학시킬 정도의 부찰이었으나 공비토벌때는 공산패잔병들의 병원으로 쓰이는 불운도 겪었다.

사내엔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벽송선사 진영, 경암 관식스님 어록목판(=경암문집)45장 중 42장이 보존되고 있다. 


[승용차]
함양->인월->마천->벽송사(36km)
함양->유림->휴천->마천->벽송사(3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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