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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적개공신 교서 - 바탕의 재료는 명주이며, 제작년대는 성화삼년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714-9

김교(金嶠 :1428 - 1480)는 세종 10년에 나서 성종 11년에 졸한 조선초기의 무신으로 자는 고경(高卿)이고, 선산군에 개봉 되었으며, 父는 판애빈사사(判禮賓寺事) 시로(時露)이다.

세종 32년(1450) 무과에 급제하고, 세조3년(1457)중시(重試)에 급제하여 훈련원 판관을 거쳐 부호군이 되었다 1460년 신숙주의 군관으로 모련위(毛憐衛)토벌에 공을 세워 사복 시윤에 초수 되었고, 1467년 5월 부친상을 당하여 충청도 홍주에 내려가 있다가 만포절제사로 기복되었다

그해(1467)에 이시애이 난이 일어나자 강순(康純)의 비장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우고, 적개 공신1등에 책훈되었고, 경원도호부사겸 경원신병마첨 절제사가 되고, 오림군에 봉해졌다. 이어 회령도호부사,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지중추부사로서 내직으로 들어와 선산군으로 개봉되었다.

성종2년 (1471) 어린 성종을 옹립하는데 공이 있어 그해 7월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다시 지중추부사,공조판서,평안도 절도사와 평안도 관찰사등을 거쳐 다시 평안도 절도사가 되었다. 1479년 명나라의 요청으로 건주야인(建州野人)을 토벌시 출전한 공으로 명나라 왕으로부터 은대(銀帶)를 하사받고 평안도 관찰사로 있다가 졸하였다.

본 교서의 크기는 가로 76cm, 세로 28cm로써 바탕의 재료는 명주이며, 제작년대는 성화삼년(146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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