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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석함) - 태실(석함) (胎室(石函))

by 넥스루비 2007. 8. 7.
대전 중구 문화동 145-3

이 태실<胎室>은 갑천변<甲川邊> 가수원다리 부근에 있던 태봉지<胎封址>에서 출토한 것으로 현재 대전광역시 향토사료관에 전시되어 있다. 태봉 정상부에 240㎝ 깊이로 구덩이를 파고 매장된 원형석함<圓形石函>의 태실은 몸체와 뚜껑으로 구성되었다. 석함은 높이 142㎝에 직경 115㎝이며, 몸체와 뚜껑은 석회<石灰>로 단단하게 붙여진 상태였다. 몸체에는 직경 50㎝, 깊이 50㎝의 홈을 판후 녹색 칠을 하였고, 홈바닥에는 배수<排水>를 위한 직경 15㎝의 구멍이 뚫려있다. 1991년 8월 대전-논산간 도로 확장공사로 인하여 발굴 이전된 태실은 이미 1934년 9월에 주민들의 신고로 조사되었었다. 당시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석함 내부에는 태를 담은 크고 작은 두 개의 백자<白磁>로 된 태항아리 태호<胎壺>와 태지석<胎誌石>이 들어 있었으며, 대리석제 태지석의 앞뒤로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앞) 황명 만력 28년 6월인시생 태 <皇明 萬曆 二十八年 六月寅時生 胎> (뒤) 황명 만력 36년 1(10)월분일초일장 <皇明 萬曆 三十六年 一(十)月初日藏> 즉, 이 태실은 선조 41년(1608)에 선조의 11번째 왕자인 경평군<慶平君:1600∼?>의 태를 안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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