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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척화비 - 서구열강( 西歐列强 )의 무력에 의한 통상교섭을 거절하고...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산4-2

병인양요< 丙寅洋擾 >(1866)와 신미양요< 辛未洋擾 >(1871)를 치른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이 고종< 高宗 > 8년(1871)에 서구열강< 西歐列强 >의 무력에 의한 통상교섭을 거절하고 저들과의 화해를 후손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쇄국정책< 鎖國政策 >의 일환으로 서울과 전국 교통 요충지에 세웠던 비석< 碑石 >중의 하나이다. 그후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나라와 통상< 通商 >하게 됨에 따라 고종< 高宗 > 19년(1882) 전국의 척화비< 斥和碑 >를 모두 철거하였다. 이 비석도 땅에 묻히었다가 뒤에 산 기슭에 옮겨져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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