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마산시 합포구 현동 631-2
근대의 대표적인 언론인이며 우국지사인 장지연 선생의 묘이다.
선생은 고종 원년(1864)에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순소, 호는 위암이며 고종 31(1894)에 진사가 되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항일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지었고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의 간섭이 커지자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1898년 내부 주사의 관지을 버리고 남궁억, 유근등과 황성신문을 창간하였으며 독립협회에도 가담하여 이상재, 이승만 등과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 방성대곡"이란 사설을 써서 일제의 침략 흉계를 통박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렸으며, 이로 인해 투옥 되었다. 이듬해 1월 출옥한 후 4월에 윤효정, 나수연 등과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민족독립을 위한 실력을 기르는 일에 힘썼다. 자강회가 강제로 해산되자 대한협회로 개편, 활동하다가 1908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해조신문의 주필이 되었다. 그 뒤 중국 각지로 유랑하다 귀국 후 진주의 경남일보 주필이 되었으나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뒤 실의에 빠져있다가 1921년 마산에서 돌아가셨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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