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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동종 - 조선중기 이후 형식화를 이룬 동종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이 동종은 실상사 경내에 위치. 통일신라시대의 범종으로 높이가 28~99cm이고, 입지름은 96~99.5cm,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이다.
1967년 3월 보광전 축대 및 땅속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미 상반부를 잃어 찌그러진 모습 그대로이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유곽(乳廓), 비천상(飛天像), 당좌(撞座) 등 이지만 우수한 수법을 볼 수 있다.
종신(鐘身)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2구의 주악비천상은 구름위에서 천의와 영락(영珞)을 위로 날리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은 성덕대왕 신종과 상원사 동종(上院寺銅鐘)을 연상케 한다. 생황과 피리를 불고 있는 비천의 풍만한 모습은 신라불상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종은 남아있는 부분의 입지름으로 보아 상원사 동종보다 약간 큰 규모였으리라 추정되는데 실상사의 창건시(828) 함께 주조되었다고 한다.

용뉴에는 여의주가 없는 용이 종천판(鐘千板)을 딛고 있는 형상이며, 용통(龍筒)은 간략화된 용의 꼬리가 휘감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종의 형상은 상대와 천판 사이에 입화식(立花飾)이 없어졌으며, 하대문양(下帶紋樣)이 없어지고, 상대(相帶)문양이 범자문(梵字文)으로 대치된 것이다.
그러나 간략화되기는 했으나, 용통의 존재는 한국종의 전통을 간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비천상의 경직된 표현 등은 한국 동종이 조선중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이루는 형식화를 보여주고 있다. 제작연대는 종기(鐘記)에 강희(康熙) 33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 숙종 20년(1694년)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대에는 종신(鐘身) 보다 한단 높게 원형 단을 만들고, 그 안에 한자씩 범문(梵文)을 12곳에 양각하였다. 이 범문자대의 아래 네 곳에 유곽(乳廓)이 있으며, 방형 유곽의 외연에는 인동초문(忍冬草紋)을 양각하였다.
유두(乳頭)는 팔옆의 중판연화판(重瓣蓮花瓣)으로 유두를 받치고 있다. 유곽 사이의 공간에는 두 손으로 꽃가지를 잡고, 보관을 쓴 보살상이 1구씩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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