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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리신라비 - 신라시대 정치, 경제, 사회의 모습을 밝힐 수 있는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1∼2리 342-1 신광면사무소

1989년 3월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 냉수(冷水) 2리에서 발견된 이 비는 현재 신광면 면사무소의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의 비석 중 최고일 뿐 아니라 여기에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습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학술적으로도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대구의 모산학술재단(慕山學術財團)과 한국고대사연구회(韓國古代史硏究會)의 주관으로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종합적인 학술발표회와 토론회가 개최된 바 있다. 이 발표회를 통하여 10편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이후에도 이 비에 관한 논문들이 다수 발표되었다.
이 비의 발견자는 냉수 2리에 사는 이상운(李相雲)으로 비가 처음 발견된 날짜는 1989년 3월 30일이며 신문방송들에 의하여 보도된 것은 4월 13일이었다.

비의 크기는 가로가 72㎝, 가로 67㎝, 두께가 25∼30㎝로 전면에 12행 152자, 후면에 7행 59자, 그리고 상면에 5행 20자가 새겨져 있어 총 24행 231글자이다.
글자를 새김하는 세로줄과 가로줄이 맞추어지지 않아 행마다 글자수도 일정하지 않다.
글자의 크기도 일정하기 않아 전면의 글자 가운데 가장 큰 글자는 길이와 폭이 각 5㎝이고, 가장 작은 자는 길이와 폭이 1∼3㎝이다. 후면에서 큰 글자는 길이와 폭이 7∼5㎝에 달하는 글자도 있다.

서체에 대해서는 해서체(楷書體)로 쓰였으나 예서체(隸書體)의 기풍이 농후히 남아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고예(古隸)에 가까운 서체로 전서(篆書), 초서(草書)의 자획까지 남아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1988년 4월에 발견된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 AD 524年)와 더불어 5∼6세기 신라사 이해를 위한 풍부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현재까지 발견된 신라시대의 비중에서 연대가 가장 빠르다는 점과 보존상태가 양호해 비문을 거의 판독할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왕명을 다룬 초기 율령체제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매우 귀중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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