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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안희제생가 - 조선후기의 민가 건축양식의 대표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168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는 안채와 집사실(사랑채)의 2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조기와 및 초가집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구조인데 1944년 12월 집사실에 화재가 발생하여 1996년 5월에 복원하면서 집사실 지붕을 띠집으로 바꾸었다.
이들 가옥은 조선후기의 민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역사적 의미가 깊이 담긴 곳이다.
입산리의 뒷산에는 백산선생이 학문을 닦던 고산제가 남아있다.

백산 안희제는 1885년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창남학교와 1908년 의신학교를 창설하였다. 1909년 동래 구명학교와 대구 교남학교 건립 등으로 신학문 보급에 힘썼다.
27세때 만주에서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소련으로 망명하여 독립순보를 간행하였다.
30세에 부산에서 백산상해를 설립하여 독립운동 자본금을 마련하였으며 기미육영회를 조직하고 1926년 언론창달을 위해 시대일보를 인수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금되었고 1943년 만주대종교단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출옥 4시간만인 1943년 9월 2일에 사망하였다.

선생의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부속사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농가형으로 민가나 사대부의 주택과는 달리 단순한 배치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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