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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 - 군 전체로서의 소싸움, 어떤때는 면단위 마을 단위의 소싸움

by 넥스루비 2007. 8. 7.
소싸움은 숫소(壯牛:장우)끼리의 싸움이며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농경사회가 소를 기르기 시작할 때 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을 안의 목동들이 숫소끼리의 싸움을 붙이기도 했을 것이고 이웃 마을의 소와도 싸움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농사가 있는 곳에는 소가 있게 되었고, 소가 있는 곳에는 소싸움이 있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농경사회의 풍속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 같은 자연발생적인 소싸움이 점차 농촌사람들의 흥미거리가 되고 승부의식으로 작용되어 농촌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마을과 마을과의 소싸움, 지역과 지역의 대항전 또는 힘센 소들끼리의 승부전으로 변해 갔을 것이다. 싸움의 시기도 추운 겨울철이나 농사일이 바쁜 농번기를 피하여 곡식이 무르익고 소들이 들판에서 풀을 배부르게 뜯어먹어 영양과 운동근육의 활력이 왕성할때인 7월 백중절이나 추석날의 명절과 연결되어 실시하게 되었으며 농작물의 풍작을 즐기는 농촌사회의 축제와도 같은 풍속으로 정착하게 되어졌다.

우리 의령의 소싸움도 이러한 소싸움 풍속중의 하나로서 향토문화의 애환과 함께 오랜 전통의 내력을 이어오고 있다. 때로는 군 전체로서의 소싸움, 어떤때는 면단위 마을 단위의 소싸움이 되기도 했다.

비지땀을 흘렸던 농민들의 위로잔치가 되고 농촌사회의 고충을 서로 이해하면서 가을의 풍작과 즐거움을 나누는 축제이기도 했다.

소싸움은 넓은 모래사장이나 풀밭에서 실시되었으며 남산천과 정암진의 모래시장, 가례면의 한내변, 유곡면의 세간천변,부림천변 등의 향토의 소싸움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 장소가 미리 정해지면 음식장사들은 근처에 제각기 차일이나 칸막이를 설치하고는 "막걸리"를 비롯한 돼지고기와 나물 등의 푸짐한 향토음식들을 차려놓고 구경꾼들인 손님을 기다리게 된다.

"고삐"와 "꼬뚜레"를 푼 싸움소들이 전쟁터의 장수들처럼 의기 충전한 상머슴이나 주인에게 이끌려 우렁찬 목소리를 지르면서 싸움터의 이곳 저곳을 돌고는 자기편 관중들로부터 둘러싸여 격려와 쓰다 듬을 받고 있는 풍경은 "農者天下之大本 (농자천하지대본)"의 축제임을 실감케 해준다.

싸움터에 나간 싸움소는 평소의 크고 우둔해 보이던 것과는 달리 일격에 적을 무찌를 듯이 용감한 공격자세로서 잠깐동안 상대를 응시하다가 순간적으로 급소와 허를 찔러 뿔로 받고 치면서 밀어 부치고 밀리기도 하여 모래사장과 풀밭은 소들의 격투장으로 변한다.모래먼지가 일어나고 관중들의 응원하는 흥분된 함성소리와 함께 상머슴이나 주인이 곁에 서서 『받아라』『찍어라』 『이러이러』 하는 채찍소리에 싸움소들도 있는 힘과 용기를 다하여 『뿔걸이』『옆목치기』『들치기』등의 본능적인 공격을 계속하면서 밀어 붙인다. 약한 쪽이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날 때까지는 몇분 사이가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길게는 수 10분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싸움은 그 동작으로도 미리 알 수가 있다. 달아날 방향을 찾아보려는 듯 이 옆눈동자를 돌리거나 꼬리를 흔들고 뒷 배가 들쭉 날쭉하면서 똥을 싸거나 입에 흰거품을 내뿜는 소가 겁을 먹고 자신을 잃은 표시로서 반드시 싸움에서 지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싸움에서 이긴 소는 목과 뿔을 비단과 들꽃으로 장식하기도 하여 상머슴이나 주인이 등에 타고는 온 마을 사람들이 춤과 농악을 울리고 길을 누비면서 개선하는 군사들처럼 유유하게 마을로 돌아오는데 주인집에서 마련한 음식으로 마을 잔치가 이어지면서 밤이 깊을때까지 축제분위기에 젖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소싸움의 열기와 풍속을 향토의 흘러간 역사와 함께 추억속으로 사라져 버릴 운명속에 있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소싸움의 그 그리운 풍속이 고향의 푸르른 저 강산과 함께 길이 전해져 가기를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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