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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품송 - 노거수로서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함께 쌍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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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품송 - 노거수로서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함께 쌍벽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 8. 7. 00:09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17-3

수령<樹齡>은 6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5m, 가슴높이의 둘레가 4.7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10.3m, 서쪽이 9.6m, 남쪽이 9.0m, 북쪽이 10m이다. 이곳 속리의 정이품송은 천연기념물 노거수로서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이 소나무는 법주사로 들어가기전 약 3㎞되는 지점에 서 있고 그 주변을 지나는 도로가 있다. 이 소나무는 수관이 우산을 편 모양으로 정제하고 무척 아름답다. 사방으로 고루 퍼진 곁가지가 알맞게 아래로 드리우고 있다. 불행하게도 1993년 봄에 폭풍이 불어 곁가지 하나가 절단되어 대칭적인 수관에 흠집을 낸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나무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안고 있다. 즉 1464년<甲申年> 세조대왕<世祖大王>이 법주사로 행차를 하실 때 대왕을 태운 가마가 이 소나무의 아랫가지에 걸리게 되었을 때 이 소나무는 그 가지를 쳐들어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연<輦>걸이 소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또 대왕께서 이곳을 지나다가 비를 피했다는 말도 있다. 왕이 큰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전설은 중국에도 있긴 하다. 이러한 사연으로 해서 대왕께서는 이 소나무에 정이품<正二品>(현재의 장관급의 위계)의 벼슬을 내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소나무로 부르고 있다.

이 소나무가 서 있는 앞마을의 명칭이 진허<陣墟>인데 이것은 그당시 대왕을 호위하던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데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이 약 440년전에 있었던 것이라면 이 소나무의 수령은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될 수 있다.

이 소나무는 옆을 흐르는 계류가 퇴적시킨 사질 양토위에 서 있는데 이러한 토성은 수분조건, 공기조건 그리고 토양 미생물의 번식 등 소나무에 적합해서 이 소나무가 그간 건강하게 오래 살아 올 수 있었다고 짐작된다.

이 소나무는 그간 줄기 아랫쪽 일부가 부패해서 외과시술을 받은 바 있다. 1980년경부터 우리나라 남쪽에서 소나무를 가해하면서 올라온 솔잎혹파리의 침범이 이곳에 이르자 1982년에는 높이 18m에 이르는 8각주형<角註形>의 굉장한 철골시설물을 세우고 이에 방충망을 설치해서 이 소나무를 덮어 솔잎혹파리의 침입을 차단했던 것이다. 이것이 큰 효과를 발휘해서 소나무는 솔잎혹파리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었던 것인데 우리국민의 나무사랑의 지극함이 국내외로 전해진 것이다. 이 방충망시설은 큰 비용부담과 또 솔잎혹파리의 해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자 1991년에 철거시켰다. 그 뒤 이 나무가 수세가 다시 약화되는 기미를 보이자 전문가들이 처방을 내려 처리를 함으로써 다시 생기를 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나무는 워낙 오래되었고 해서 앞으로 왕성한 생리의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나무의 보호에 큰 정성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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