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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객사문 - 임금의 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관리를 대접하고 묵게하던 집

by 넥스루비 2007. 8. 7.
강원 강릉시 용강동 58-1

강릉역에서 강릉시청으로 가면 시청과 연하여 국보 제 51호인 객사문이 있다. 객사라는 것은 전패를 모시어 두고, 임금의 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관리를 대접하고 묵게하던 집이다.
강릉에 있는 이 객사문은 옛 객사의 문으로 고려 태조 19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현 건물은 고려 후기의 건물로서,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맞지붕이다.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그 중후미와 구조의 정교함은 우리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드문 건축물이다.봉정사 극락전,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 고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걸작이다.
본부객사였던 임영관은 1929년 일제가 강릉공립보통학교를 확장할때 헐어버려 지금은 그 모습을 볼길이 없고 그 터가 사적 제 388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두었던 관사(官舍)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정전(正殿)에 국왕의 전패(殿牌)를 모셔 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궐망배(向闕望拜)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가 오면 여기서 유숙(留宿)하게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 본부객사로 총 83칸의 건물을 창건하고 임영관(臨瀛館)이라 하였다.
공민왕(恭愍王) 15년(1366) 왕이 낙산사(洛山寺)로 행차 도중 현액을 친필로 썼다고 전한다. 그후 수차 중수되어 오다가 1929년 일제시 강릉공립보통학교(후에 강릉초등학교가 됨) 시설로 이용되었고 이 학교가 헐린 뒤에는 빈터로 남게 되었다.
1967년 12월 여기에 강릉경찰서 청사가 세워지게 되었으며 이 문만이 남게 되었다. 남산의 오성정(五星亭 ), 금산의 월화정(月花亭 ), 경포의 방해정(放海亭) 등은 객사의 일부이었던 것을 옮긴 것이라 한다. 이 문은 간결하고 소박하고 주심포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맞배지붕의 삼문(三門)이다.
기둥의 배흘림은 현존해 있는 목조건축 유구(遺構)중 가장 크고 주두(柱頭)와 소로(小累)의 굽은 곡을 이루고 굽받침을 두었으며 단장혀(短長舌)로 외목도리(外目道理)를 받게 하였다. 또한 쇠서(牛舌), 첨차(籤遮 ) 화반(花盤), 보(樑) 등의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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